“영화기자는 일주일에 영화를 몇편이나 보나요?” 직무 탐구를 목적으로 한 특강에 참석하게 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다. 영화를 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영화기자는 비전문가보다 많은 영화를 보지 않겠냐는 짐작이 내포된 질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결같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스타워즈>와 같은 프랜차이즈물의 신작이 개봉한다면 복습 차원에서 전편을 다 몰아봐야 하겠지만,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한편의 영화를 여러 번 돌려 봐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느 쪽이든 영화를 보는 데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어느덧 업무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를 오랜 시간 동안 보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사 구조가 복잡한 작품을 언론 시사에서 딱 한번 보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때가 더욱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늘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대상이다. 기억과 꿈, 마술과 물리학 법칙 등을 도구 삼아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조합하는 창작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편집을 통해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구현하며 매 작품 새로운 두뇌 게임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놀란의 영화를 볼 때면 중요한 단서를 놓칠세라 두꺼운 수첩과 펜을 들고 영화의 오프닝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쉴 틈 없이 메모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 있곤 한다.
8월 26일 개봉한 놀란의 신작 <테넷>은 그의 전작을 통틀어 내용을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주말 극장에서 <테넷>을 관람한 <씨네21> 기자들이 함께 모여 줄거리를 정리하는 데 꼬박 이틀의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이마저도 완벽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같은 화면 속에 공존하게 하는 이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시간을 물리적으로 구현해온 놀란의 야심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이해하려 들지 마. 느껴”라는 극중 대사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스펙터클을 온전히 체감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해하고 느낀 바를 알기 쉬운 언어로 독자에게 전달해야하는 영화 매체의 숙명은 지난 한주 내내 기자들을 괴롭혔다. 그렇게 탄생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테넷>’ 스페셜 에디션은 베일에 싸여 있던 <테넷>이 전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 뒤 잡지를 출간하기까지 5일간의 한정된 시간 동안 최선의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편집부의 모든 기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군분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연출자이자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 세계를 총정리하고, <테넷>이 이뤄낸 성취와 한계, 난해한 서사와 물리학 개념에 대한 해석,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39페이지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놀란은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인터스텔라>의 제작자 린다 옵스트, 김우형 촬영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방준석 음악감독 등 국내외 영화 키스탭들이 전하는 놀란 영화의 매력에 관한 코멘트는 크리스토퍼 놀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적 동지인 린다 옵스트는 놀란에 대한 코멘트를 보내며, <씨네21> 스페셜 에디션의 출간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도 직접 알리겠다고 전해왔다. 이 책을 보게 될 놀란 감독의 반응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독자 여러분 또한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스페셜 에디션을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