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기기괴괴 성형수'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작
2020-09-08
글 : 배동미

“야, 너 왜 마스크 안 썼어? 아침에 네 얼굴 보면 불편하다고 했지.”톱스타 미리가 몸집이 큰 메이크업 아티스트 예지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예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미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모를 언급하고 지적하면서 온갖 멸시의 눈빛을 보낸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거나,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지는 등 예지의 사소한 행동은 모두 살과 외모로 연결되는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그런 예지 앞으로 어느 날 몇통의 샴푸와 USB 하나가 담긴 택배 꾸러미가 배달된다. USB의 동영상을 통해 예지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샴푸통에 담긴 액체, 일명 ‘성형수’에 20분간 얼굴을 담그면 살이 찰흙처럼 말랑해져서 불필요한 살은 떼어내고 셀프 성형할 수 있다는 것. 주저하는 예지에게 영상 속 여성은 속삭인다. “20분이 너무 길다고요? 지금까지 당신이 외모로 고통받은 시간에 비하면 찰나입니다.” 과연 예지가 성형수의 마력을 거부할 수 있을까.

성형수에 얼굴을 담근 예지는 20분 뒤 자신의 얼굴을 찢고 조각내고 매만져서 아름다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예지의 얼굴은 변했지만 몸뚱이는 그대로라는 것, 그리고 예지는 몸까지 모두 성형수로 범벅해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것,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뚱뚱했던 예지를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여성으로 나타나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 예지의 욕망은 점점 더 다양한 방향으로, 그러면서도 강하게 증폭된다. 예지는 설혜라는 가명을 쓰고 연예인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 같았으나 더욱더 성형수를 원하게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외모에 대한 예지의 강박은 커져만 간다. 영화는 단순히 예지를 피해자로 묘사하지 않으며 외모 지상주의 사회 자체를 조명한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아름다움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다”(Beauty is only skin deep)라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며 상상력을 펼친 애니메이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은 늘 인간의 복잡한 관심사였지만, 오늘날처럼 외모에 집착하는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작이다. 영화는 설혜로 다시 태어난 예지가 경험하는 사회 역시 녹록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짚으며, 외모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도 승자일 수 없다는 점을 서늘하게 조명한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주류와 비슷하게 자리 잡은 인터넷 놀이 문화와 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애니메이션영화 <기기괴괴 성형수>는 네이버 인기 웹툰 <기기괴괴>(작가 오성대)에서 가장 인기를 끈 ‘성형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했다. 10분 이내로 빠르게 감상할 수 있는 웹툰을 장편영화로 만들면서, 원작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캐릭터들의 전사가 대거 추가되었다. 웹툰에서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예지의 직업이 영화 초반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제시되면서, 예지는 뷰티 산업에 밀접하게 연계된 다층적인 인물로 탄생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 발레를 배우면서 외모로 인해 박탈감을 느껴왔다는 점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예지의 내면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아울러 웹툰에서는 깜짝 반전에 그쳤던 남자 친구 지훈에 대해 긴 시간을 들여 설명하면서 서사에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도 <기기괴괴 성형수>는 얼굴을 찰흙과 같이 만들 수 있는 성형수에 20분만 담가야 한다는 웹툰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약속된 20분이 넘는 순간 예지에게 벌어지는 일을 기괴하게 그려낸다. 살이 흘러내리고 신체가 훼손되는 모습이 3D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면서 원작 웹툰의 팬들은 물론 호러, 슬래셔 장르의 영화 팬들에게도 장르적인 재미를 안긴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올해 6월 제44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그 밖에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랑스 에트랑제국제영화제, 캐나다 판타지아 인터내셔널 필름페스티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슬래시 필름 페스티벌, 뉴욕아시아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9월 9일 국내 개봉을 시작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CHECK POINT

‘성형수’ 사용법

바르면 성형이 되는 성형수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성형수와 물을 1:4 비율로 섞는다. 성형수 원액이 절대 피부에 닿지 않도록 한다. 호흡을 위해 호스를 입에 물고 20분간 성형수에 얼굴을 담근다. 찰흙처럼 녹은 살은 칼로 떼어낸다. 원하는 모양대로 얼굴을 손으로 매만져 성형을 한다.

네이버 인기 웹툰이 원작

‘성형수’ 에피소드는 2015년 2월 4일에 시작해서 4월 22일까지 약 2개월간 총 11편에 걸쳐 연재된 이야기로, 오성대 작가가 장기 휴식 후 시즌2 연재를 시작하면서 ‘뉴 성형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 웹툰 <기기괴괴> 시리즈의 대표 에피소드다. 웹툰 <기기괴괴> 시리즈는 현재까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목요일마다 연재되고 있다.

영화화만 기다렸던 K애니

<기기괴괴> 원작 웹툰을 본 전병진 프로듀서는 2015년 3월 <기기괴괴>의 애니메이션영화를 만들기 위해 판권 계약을 맺었다. 중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TV시리즈와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으로 구상되었으나 중국의 한한령으로 어려움을 느껴 국내에서 순제작비 20억원을 들여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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