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뉴 뮤턴트' 개성 강한 뮤턴트들의 서사시인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
2020-09-15
글 : 배동미

토네이도가 마을을 덮치면서 혼자 살아남은 소녀 대니(블루 헌트)가 사건 당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멀버리 정신병원의 닥터 레예스(알리시 브라가)는 “트라우마가 가짜 기억을 만들 수 있다" 고 말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네이도가 마을을 집어삼킬 때 숨어있던 대니의 뺨으로 눈송이가 떨어져 녹아내리던 감각은 또렷하다. 하지만 토네이도가 불 때 눈이 내릴 수는 없는 법. 그때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니가 기억하는 과거는 진짜일까, 닥터 레예스의 말대로 가짜 기억에 불과한 걸까.

어린 뮤턴트들을 수용하는 멀버리 병원에 가장 마지막으로 입원한 대니는 자신이 돌연변이인 ‘뮤턴트’라는 사실을 알지만, 정확히 어떤 초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먼저 입원한 레인(메이지 윌리엄스)은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샘(찰리 히턴)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어디든 뚫고 지나간다. 입원 첫날부터 대니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일리야나(애니아 테일러조이)는 오른팔을 검푸른 검으로 만들어 휘두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위험할 땐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 ‘림보’로 재빨리 달아나는 능력까지 지녔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타고났는지도 모르는 대니와 달리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고 제어하는 힘까지 잘 안다. 브라질에서 온 바람둥이 로베르토만이 스스로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이야기하기조차 꺼린다. 대니는 어린 뮤턴트들에게 통제력을 가르치는 닥터 레예스와 함께 상담을 이어가면서 능력을 통제하는 힘을 키워나가려고 한다.

<뉴 뮤턴트>는 개성 강한 뮤턴트들의 서사시인 <엑스맨>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1982년 출간된 마블 그래픽노블 코믹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프로페서X가 엑스맨 멤버들이 모두 사망한 줄 알고 새로운 뮤턴트들을 찾는 원작 코믹북의 이야기에 따라, 매그니토와 울버린, 진 등 1세대 뮤턴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프로페서X만이 닥터레예스의 말을 통해 그 존재만 감지될 뿐이다. 대신 10대 뮤턴트들을 교육하고 관찰하는 닥터 레예스는 이전 시리즈에서 뮤턴트들의 교육과 정치 세력화에 힘썼던 프로페서X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다만 뮤턴트들을 무조건 환대하던 자비에스쿨의 밝은 분위기와 달리, 으스스한 정신병원이란 공간적 배경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무드를 조성한다.

<뉴 뮤턴트>는 남들과는 다른 존재인 뮤턴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10대들에 대한 영화다. 10대들이 스스로에게느끼는 이질적인 감정을 호러 장르의 문법에 따라 재현한 작품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가장 깊게 고민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불안과 불확신을 최고 수준까지 키우는 여느 10대처럼 대니는 자신의 능력과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가장 눈에 띄는 뮤턴트는 멀버리 정신병원의 최장기 입원자 일리야나로, 강한 능력은 물론 어릴 적 겪은 끔찍한 고통으로 인해 타인을 믿지 못하는 캐릭터다.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첫 만남을 다룬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에서 전쟁으로 어머니를 잃고 분노에 가득 찼던 매그니토와 비슷한 역할을 일리야나가 맡는다. 일리야나는 스스로 가장 강한 뮤턴트라고 할 만큼 자기주장이 세고 실제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영화 후반부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모두 책임진다.

<엑스맨>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보다 뮤턴트들의 개성 넘치는 초능력을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다. <뉴 뮤턴트>는 시리즈에 호러 장르의 문법을 대입하면서 영화 초반에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하는 까닭에, 시리즈 자체의 매력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뮤턴트들의 능력은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재현되기 때문에 그것을 보려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CHECK POINT

어린 뮤턴트

<뉴 뮤턴트>의 설명에 따르면, 13살까지 평범하게 살던 뮤턴트들은 사춘기를 거치면서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는 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의지와 달리 타인을 해하기도 한다.

조시 분 감독과 각본가 네이트 리

절친인 조시 분 감독과 각본가 네이트 리는 어린 시절부터 마블 그래픽노블 코믹북을 함께 보던 사이로, <안녕, 헤이즐>을 마친 뒤부터 <뉴 뮤턴트> 작업에 뛰어들었다.

늦어진 개봉, 무성한 소문

2018년 4월 개봉예정이었던 <뉴 뮤턴트>는 이십세기폭스사와 월트 디즈니사의 합병 이슈로 인해 여러 차례 개봉을 연기했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불어닥쳤다. <엑스맨> 시리즈의 신작을 기다리던 미국 팬들은 지난 8월 28일에야 극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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