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4년 만에 극장 개봉하는 <공포분자>는 에드워드 양 감독의‘타이베이 3부작’ 중 <타이페이 스토리>(1985)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의 중간에 위치한 작품이다. 등장인물 4명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구조인데 형식주의자로서 그의 완벽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소년은 경찰 수사를 피해 달아나다가 다리를 다친 소녀를 우연히 카메라에 담고, 사진 속 그녀에게 점점 매료된다. 이립중(이립군)과 주울분(무건인)은 결혼 생활에 지쳐 권태기에 빠진 부부다. 의사인 이립중은 동료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까닭에 과장 승진 기회를 얻는다.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 주울분은 소설을 쓰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불량 학생과 어울리는게 못마땅한 소녀의 엄마는 소녀를 집에 가두고, 소녀는 무료한 생활이 지겨워 전화번호부를 뒤져 무작위로 장난 전화를 건다. 그때 소설을 쓰던 주울분이 소녀의 전화를 받는다.
줄거리만 보면 연관성 없는 인물들의 사연을 나열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영화는 인물관계의 변화에 따라 방향이 정교하게 바뀐다.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그로 인해 도시가 점점 커질수록 영화 속 인물들의 내면은 공허해진다. 사진 속 소녀에 빠진 소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장난 전화를 거는 소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채 성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립중, 부부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 채 소설에 몰두하는 주울분 등 인물들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위선을 드러낸다. <공포분자>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급변하는 성장의 소용돌이에 빠진 대만 사회에 메스를 들이댄, 차갑고 냉철한 스릴러물이자 사회풍자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