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테넷'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의지에 대하여
2020-09-15
글 : 오진우 (평론가)
새로운 우주로 건너가는 법

※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사고 실험. 영화관이란 검은 상자 속에서 당신은 <테넷>을 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당신은 출구 앞으로 간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테넷>에 관한 거의 모든 비평과 해석이 나온 하나의 ‘현실’이 펼쳐진다. 발걸음을 뒤로하여 다시 객석에 착석한다면 당신은 이 영화가 트는 하나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 <The Plan>, 이 노래는 트래비스 스콧이 부른 <테넷>의 엔딩곡이다. 이 글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The Plan>의 가사 중 2개의 라인은 <테넷>을 포함한 3편의 영화를 묶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You don’t know where we stand”와 “Not a vibe (yeah) but a wave, with the sound by the way”가 그것이다. 종합해보면 그것은 공간과 파동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속에 여러 층의 공간이 등장한다. 그는 이 공간을 관통하는 파동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시키며 이를 통해 또 다른 공간을 창출한다.

동선의 영화, <테넷>

<테넷>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과거로 가보자. 위에서 언급한 3편의 영화 중 첫 번째 영화는 <인셉션>이다. <인셉션>이 그리는 운동의 방향은 U자의 형태다. 영화는 현실에서 시작해 꿈을 통해 무의식의 밑바닥인 림보까지 침잠해버린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를 갖는다. 꿈은 총 4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컨테이너 박스처럼 직육면체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서 밴, 엘리베이터, 호텔 복도 등의 직육면체가 원을 그리거나 수직으로 이동한다. 각 단계의 꿈은 경계면이 존재하고 전 단계의 꿈에서 영향을 받는다. 날씨나 중력의 변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꿈은 역의 방향으로 영향을 주진 못한다. 총 4단계의 꿈의 공간들을 관통하는 것은 음악과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무의식의 파편들이다. 영화는 이 두개를 상충시킨다. 꿈속에서 울려 퍼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는 맬(마리옹 코티야르)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찬 코브의 감정과 충돌한다.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가사를 수행이라도 하듯이 코브는 림보에서 맬과 직면하여 자신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코브는 무의식이란 수렁에서 빠져나오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놀란은 각 단계의 공간들을 관통하는 방식을 <인터스텔라>에서 좀더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펜으로 겹친 종이를 뚫어서 웜홀을 설명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인터스텔라>는 <인셉션>과는 반대 방향의 운동성을 보인다. 역-U자의 형태를 취하는 이 영화는 우주(Space)라는 공간을 계속해서 부유하다 다시 어딘가로 돌아온다. <인터스텔라>에서 모든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중력이다. 블랙홀로 스스로 들어간 쿠퍼(매튜 매커너헤이)는 5차원의 공간 속에 갇힌다. 이 공간은 직육면체를 연상시켰던 <인셉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수많은 직육면체를 연결하여 5차원 공간을 3차원 공간으로 구현한다. 이 공간에서 쿠퍼는 딸인 브랜드를 볼 수 있지만 브랜드는 그렇지 못한다. 쿠퍼는 딸을 가로막는 일종의 경계면을 누르면서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지구에 있는 브랜드에겐 중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쿠퍼는 이를 사랑이라 설명한다. 부녀지간의 사랑으로 모든 시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인터스텔라>는 이를 통해 지구를 구해내고 쿠퍼는 딸과의 재회에 성공한다.

앞선 두 영화에서는 공간들을 관통하는 어떤 감정선이 존재했다. <테넷>은 인물간의 감정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놀란은 첩보물로 영화의 장르를 택함으로써 인물들의 감정을 숨기는 대신 다른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인물들의 동선이다. 이들의 움직임 자체가 바로 시간이다. 영화의 복잡한 타임라인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시작과 끝 선을 길게 뺀‘ㄹ’의 형태와 같다. 꺾이는 부분은 인버전을 의미한다. ㄹ 모양의 타임라인은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겪는 시점이며 그는 시간을 순행하여 생존한다. 반대로 닐(로버트 패티슨)은 좌우 반전된 ㄹ의 형태로 시간을 역행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의 정반합 작전을 통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은구출되고 인류는 새로운 우주를 맞이한다.

<테넷>이 선보이는 파동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동선, 즉 타임라인이다. 이러한 파동들을 담아내는 공간은 고정된 판으로서 존재한다. <테넷>의 공간 역시 앞서 언급한 2편의 영화와 같이 긴 직사각형의 모습을 지닌다. 긴 공간에서 인물들의 동선이 좀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는 질 들뢰즈가 감정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한 시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테넷>의 공간은 부동의 판으로서 존재하고 그 위에 인물들의 동선은 시곗바늘처럼 끊임없이 교차한다. 들뢰즈는 시계에 비유한 감정 이미지를 인물들의 얼굴과 클로즈업 숏을 통해서 사유했다. 놀란은 <테넷>을 통해 감정 이미지보다는 시간 이미지를 구축하려 든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은 기차 레일 위에서 고문을 당한다. 양옆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여기서 시간은 순행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기차가 설령 거꾸로 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바로 시간의 방향을 탐지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소로 바다가 있다. 풍력발전소의 프로펠러의 방향과 바다의 물결만 놓고 보면 시간이 순행인지 역행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쇄빙선을 등장시킨다. 배와 바다의 경계면에서 이는 물결을 통해 배가 역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방향성이 무화된 이러한 공간을 영화는 활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고방식에 눈뜨는 공간

<테넷>은 시간의 방향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공간을 구성한다. 영화는 도로라는 공간 위에서 타임라인을 교차시키며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도로 위에서 시간을 순행하는 주인공과 닐 그리고 역행하는 사토르(케네스 브래너)가 있다. 이 두 차량 사이에 영화는 인버전한 주인공을 위치시킨다. 인버전한 주인공은 이 상황을 바꿔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여기서 주인공은 닐이 누누이 말한 대명제인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를 깨닫게 된다.

도로가 시간의 방향성을 좀더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라면, 인버전 장치가 설치된 공간은 새로운 사고 방식에 눈을 뜨게 하는 곳이다. 이 공간은 유리로 공간을 분리시켰지만 서로 소통이 가능한 곳이다. 하지만 인버전 장치에 탑승하려고 할 때 유리는 더이상 유리가 아니다. 유리에 자신이 마음먹은 결과값이 맺힌다. 인버전은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가능한 기술이다. <테넷>은 얼핏 결과론적인 세계관으로 미끄러지지만 영화는 그 순환하는 고리를 깨는 데 목표를 둔다. 닐이 그 역할을 한다. 닐은 자신이 죽는 것을 알고 인버전하여 갱도에들어가 죽음을 택하려 한다. 시간이 순행하는 상황에서 닐의 선택은 무엇일까? 닐은 자유의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렇게해야만 테넷의 계획이 완수되기 때문이다.

<테넷>은 인버전을 앞세워 시간 이미지만을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영화는 닐이 새로운 과거를 구축하고자 가는 발걸음에서 감정 이미지를 짧게나마 선보인다.닐의 자유의지가 만드는 새로운 과거는 주인공이 맞이하는 새로운 현재와 미래, 즉 새로운 우주로 연결된다. 닐은 시공간을 역으로 관통하여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한 파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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