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회당 10~20분 분량의 숏폼 콘텐츠 전성시대, 거대 자본 운용하는 제작사들 대거 뛰어드는 이유는
2020-09-19
글 : 임수연
글 : 김소미
추억팔이도 매운맛도 다 된다
<연애혁명>

이제는 숏폼 콘텐츠만으로 나만의 편성표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월요일에는 <자이언트 펭TV>, 화요일에는 <헨리 뭐 했니>, 수요일에는 <시켜서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목요일에는 <연애혁명>, 그리고 금요일에는 <네고왕>을 보며 한주를 마무리할 수 있다. 물론 업로드되는 당일이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든 10~20분 정도 짬을 내서 볼 수 있는 게 숏폼의 특징이기 때문에 굳이 이 스케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TV를 켜지 않고도 일정한 시청 루틴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숏폼 시장이 급성장한 데에는 환경적으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부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OTT가 일상의 일부가 돼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MZ 세대는 자연스럽게 숏폼 역시 선호한다. <연애혁명>을 제작한 정근욱 메리크리스마스 부사장은 “콘텐츠 산업이 플랫폼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가 60~70분 분량으로 제작되는 것은 광고 비즈니스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10~20대는 드라마 전체를 다 보지 않고 15~20분짜리 요약본으로 소비한다. 숏폼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있는 소비자로부터 지금의 변화가 시작됐다.” 특히 거대 자본을 등에 업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저예산·1인 크리에이터 중심이었던 생태계도 급변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카카오TV를 통해 공개되는 드라마 <연애혁명>은 ‘포털 대통합’을 이루어냈다. 카카오TV는 물론 7년 동안 원작 웹툰이 연재된 네이버에서도 <연애혁명>을 다운로드받아 감상할 수 있다. 드라마는 쇼박스의 전성기를 이끈 유정훈 대표가 설립한 신생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에서 제작한다. JTBC의 자회사 ‘스튜디오 룰루랄라’에서 제작한 <워크맨> <와썹맨>이 대성공을 거두었고, tvN의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웹예능 채널 <채널 십오야>의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나 <라끼남>은 CJ ENM 산하 웹예능의 효자 콘텐츠다.

<네고왕>

숏폼은 상대적으로 의사 결정이 빠르고 주제 선정이나 방송 수위에 있어 도전적인 기획이 가능하다. 이는 수년 사이에 열성 시청자들을 끌어모은 유인이 됐다. 숏폼 열풍의 씨앗을 뿌린 대표적인 콘텐츠 <문명특급>은 원래 SBS 보도본부의 모바일 콘텐츠 브랜드 ‘스브스뉴스’의 한 시리즈물에서 시작했다. <문명특급>을 연출하는 홍민지 SBS디지털뉴스랩 전략콘텐츠팀 PD는 “숏폼은 제작비를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찍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회사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었다. (웃음) ‘비혼식’ 에피소드는 카카오톡으로 재재언니에게 의견을 주고 재밌겠다는 답을 얻은 후 바로 진행한 것”이라고 탄생 배경을 전했다. “새로운 언더 문화에 깃발을 꽂으러 다니며 이게 마이너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이 채널은 빠르게 팬층을 확보해나갔다. 최근에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 인력들이 방송 이미지의 확장을 위해 스핀오프로 격으로 만드는 콘텐츠도 급증하기 시작했다.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 웹예능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이하 <여은파>)를 연출하는 황지영 MBC PD는 “출연진끼리 너무 친하다보니 우리끼리 모여서 게임 버라이어티라든지 추격 신 같은 포맷도 하고 싶은 니즈가 있다. 하지만 관찰 예능에서는 그런 것을 소화할 수 없다”며 TV방송의 한계를 언급했다. “지상파 방송은 전 연령대가 다보기 때문에 ‘매운맛’은 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유튜브 진출의 이유가 됐다. 다만 이들의 경우 지속적인 웹예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황지영 PD는 “<나 혼자 산다>를 매주 하면서 스핀오프로 <여은파>를 만드는 게 힘이 든다. 시즌제 예능을 하는 곳에서는 휴지기에 숏폼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고 팀도 많은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은 많지만 MBC에서는 아직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덧붙였다.

20대라고 다 같은 20대가 아니다

<문명특급>

TV방송은 시청률 두 자리를 기록하거나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여줘야 수치만으로 화제가 되고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반면 숏폼은 실제 시청자 수는 훨씬 적지만 100만뷰만 넘어도 지나치는 이의 시선을 끌며 즉각적인 클릭을 유도할 수 있다. 추천 알고리즘 역시 잠재적 소비자를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같은 시장의 특성은 보다 세밀한 타기팅을 요구한다. 숏폼을 만드는 홍민지 PD에게 “젊은 시청층을 분석한다며 2049 시청률을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접근”이다. 15~18살, 19~22살로 연령대를 쪼개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90년대생들이 만드는 <문명특급>에는 90년대생 시청자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 안에서도 세밀하게 나눠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으로 조명한 틴탑과 유키스 편이 이렇게까지 잘될 줄 몰랐다. 내 세대에서는 그들이 추억을 상기하는 그룹까지는 아니었는데, 95년 이후에 태어난 조연출들이 ‘당연히 틴탑과 유키스죠!’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 에피소드에 두 그룹을 모두 소화하려는 계획을 틀어 분량을 더 할애하고 두편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200만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특정 세대의 수요를 잘 파악해보면 잠재적인 시청자들이 나온다.” 정근욱 부사장 역시 <연애혁명>의 타깃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현재 촬영 중인 <아직 낫서른>은 30대 여성이 주인공이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시청자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템에 따라서 타깃층은 100% 달라져야 한다. 만약 유료화된 숏폼 콘텐츠가 있다면 구매력이 있는 30~40대를 위해 퀄리티있는 막장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 장르와 소재를 새롭게 시도하면 타깃층은 확장이 가능하다.” 플레이리스트의 <에이틴> <트웬티트웬티>는 아예 숫자로 네이밍을 했다. 박태원 플레이리스트 대표는 “작품을 준비할 때 타깃 시청자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이해와 공감을 해야 한다. 수많은 오프라인의 표적 집단 면접조사(FGI)나 온라인 인터뷰,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를 파악하는 건 기본”이라고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렇듯 세분화된 타기팅이 오히려 전 연령에 소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홍민지 PD는 자우림과 강동원을 예로 들었다. “자우림은 모든 세대에 걸쳐 있는 밴드다. 나랑 재재언니는 자우림 하면 <매직 카펫 라이드>랑 <하하하송>인데 더 어린 친구들은 <샤이닝>과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얘기했다. 그래서 그 편은 세대 대통합으로 가서 모든 노래의 분량을 비슷하게 뒀다. 오히려 1040이 될 수 있는거다. ‘반도’편의 배우 강동원도 마찬가지였다. 나랑 재재언니는 무조건 우산 들어올리는 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더 어린 팀원들은 ‘재미있긴 한데 강동원이 그 이미지는 아니’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추억 소환 버튼을 누르는 게 <늑대의 유혹>인데, 그들에겐 <검은 사제들>의 돼지, <검사외전>의 ‘붐바스틱’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며 기획해야 한다.”

<라까남>

다만 아직은 숏폼 시장의 수익 모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유튜브 조회수에 따른 수익이나 제작지원(PPL)이 TV방송을 대체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스튜디오 룰루랄라의 콘텐츠가 아무리 성공해도 이는 JTBC 방송국 전체가 벌어들이는 광고 수익에 비하면 미미하다. 해외에서는 유료 서비스로 야심차게 시작한 퀴비가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으면서 유료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 여부도 다소 불투명해졌다. 황지영 PD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건 아니다. 3명이서 <여은파>를 하는 게 가성비가 좋진 않지만 유튜브에서는 지상파에서 하지 못했던 실험적인 콘텐츠를 시도한다든지 프로그램 이미지를 확장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플레이리스트측은 “작품 스토리를 활용해 시청자에게는 반가운 번외 스토리이면서 그 이야기 자체가 광고인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또 플레이리스트 IP를 활용한 MD 상품을 판매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자사의 새로운 수익 모델을 설명했다. 정근욱 부사장은 아예 일찌감치 IP 사업을 목표로 하며 확장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을 발굴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발을 웹에서 했을 뿐 지상파용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해외 시장에서 리메이크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웰메이드 숏폼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올라가야 한다.”

또다시, IP 비즈니스가 중요해진다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 - 여은파>

IP 비즈니스는 숏폼 콘텐츠가 매체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아우를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는 빌보드 톱100 2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BTS)의 인기에 유튜브가 미친 영향을 생각했을 때 결코 섣부르지 않다. 정근욱 부사장은 “기존 영화나 TV드라마는 편성 문제 등 장애물이 많지만 숏폼은 상대적으로 제작 과정이 가볍고 탄력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방송 콘텐츠 판권 수출이 활발한 것 이상으로 숏폼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될 것이다. 한국 웹툰이 아시아 및 유럽에서 각광받는 것처럼 숏폼 호흡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이 시장은 어마어마한 파급력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웹툰과 웹소설 시장이 수조원 규모로 성장한 한국은 숏폼이 성장하기에 무궁한 토지를 갖고 있다. 웹툰의 호흡은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숏폼에 가까우며, 실제로 ‘개그물’이라 분류되던 웹툰 <연애혁명>의 호흡은 20여분 러닝타임에 가장 어울린다.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여성 서사로 큰 인기를 모은 <며느라기> 등 다른 웹툰 원작 드라마도 소비자를 만날 예정이다. <문명특급>의 인기 아이템 ‘숨듣명’을 확장한 <숨듣명 콘서트>가 추석 연휴 TV편성이 확정된 것처럼 올드 미디어에 아이템을 제공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숏폼을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는 시장으로 취급하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다. 보수적인 기존 매체에서 각광받지 못한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는 시스템에 주목한다면, ‘숏폼’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은 영상 문화를 양적은 물론 질적으로 풍요롭게 이끌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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