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진흥위원회 공정법률라운지 특강 ‘영화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의 기초’
2020-09-21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저작권, 아는 만큼 보호받는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저작물’의 정의다. 창작자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에 몰두하는 동안 법과 계약의 문제는 전문가가 처리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의 다양화, 2차 창작물의 대두 등을 통해 저작권 분쟁이 더욱 첨예한 시대가 되었고, 특히 시나리오작가들이 처한 고질적인 문제인 크레딧 표기와 관련해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창작자가 스스로 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수록 자신은 물론 동료 창작자들의 권익 증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제 적극적인 배움의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내 공정법률라운지가 업계로 막 첫걸음을 뗀 시나리오작가들의 집합소, S#1에서 저작권 강의를 열었다.

지난 7월18일 오후,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시나리오작가 양성소 S#1(이하 씬원) 강의실은 저작권 개념을 공부하기 위한 신진 작가들로 북적였다. 씬원 회원은 영진위의 기획개발 분야 지원을 통해 작품을 개발 중인 창작자를 의미한다. 시나리오 아카데미, 랩, 공모전, 기획개발 지원 단계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나뉘며, 여기에 속하는 창작자들은 씬원 전용 창작 라운지에서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쓰고 많은 창작자, 업계 관계자들과 네트워킹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날 열린 강연은 영진위 공정환경조성센터(이하 공정센터) 내 공정법률라운지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일부로, 장서희 변호사가 ‘영화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의 기초’를 주제로 3시간가량 열띤 강의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이 엄격히 이뤄진 현장이었지만 모두 눈빛만은 또렷이 빛났다.

저작물, 저작자, 저작권의 개념

새로운 사업 아이템, 방송 프로그램 포맷, 영화 제목, 소설의 짧은 대목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저작물성’을 인정받는 무수한 창작의 조각들이 넘쳐난다. 저작물을 창작한 자로서 ‘저작자’의 권리, 즉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배타적, 독점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바로 ‘저작권’이다. 장서희 변호사는 이 저작권을 구성하는 두 가지 개념으로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을 소개했다. “저작재산권이 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면,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명예와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고 설명했다. 저작재산권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와 저작인격권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 등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이같은 권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통용되는지 예시를 들었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작권의 개념이 생활과 산업 곳곳에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는 대목이었다. 이를테면 계약서에서 다루는 시나리오작가의 크레딧 표기 문제, 영화 크레딧의 존재 이유 등은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이라는 법률적 근거에 의한 것이다. 저작인격권의 내용을 적용하면, 올해 한국 수입 과정에서 일부 장면이 임의로 편집된 채 개봉해 논란을 일으킨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페인 앤 글로리>의 사례 역시 ‘동일성유지권’의 개념으로 살필 수 있다. 장서희 변호사는 저작권자 구분에 있어 “향후 AI의 권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하는 이슈도 있다. 해외에서는 새로운 판결이 나오고 있다”라고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높은 비용, 다수의 인력이 협업하는 영화 창작물은 그 특성상 법률적 근거와 집행도 복잡한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저작권법에는 영상저작물의 특례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장서희 변호사는 "영화만큼 예산이 많이 소요되고 여러 분야의 인력이 다수 투입되는 창작물은 드물다. 때문에 이를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영상제작자가 법적으로 양도받게 되는 권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2차적저작물이 제작될 경우 등을 사례로 시나리오작가를 위한 조언과 영상저작물의 특례 조항을 두루 살폈다.

<6년째 연애중>

여러 명이 집필한 시나리오의 저작자는 누굴까

종종 이슈가 되는 표절 시비에 관해서 저작권법은 ‘의거성’과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장서희 변호사가 사례로 든 영화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이었다. 2015년 당시 최종림 작가가 자신이 집필한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와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유사하다며 투자·배급사인 쇼박스를 상대로 50억원의 민사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사건이다. 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문에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말이나 문자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일 뿐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령 그것이 독창적이나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이에 의거해 독립투사 여성 저격수 캐릭터가 등장하는 점, 저명한 독립운동가들의 무리가 밀정을 함께한다는 점, ‘데카당스’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점 등은 모두 표절 여부를 비껴갔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영화는 아이템 싸움’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경쟁해야 하는 시나리오작가들에게는 창작의 애로 사항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장 변호사는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할 때 아이디어까지 보호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식의 규제가 창작의 자유를 극히 침해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례는 저작권 침해에 관해 기본적으로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편”이라고 통상적인 법원의 시각을 알렸다.

<암살>이 표절 분쟁 사례라면, 영화화 과정 중 시나리오작가가 교체된 <6년째 연애중>(2007)은 저작권 침해 분쟁 사례로 거론됐다. ‘복수의 작가들이 집필한 시나리오의 저작자는 누구인가?’ 하는 주제에 특히 많은 작가들이 관심을 보였다. <6년째 연애중>의 사례는 초고 작가와 영화화된 최종고의 시나리오작가가 다른 경우로, 초고 작가가 크레딧을 얻지 못하고 잔금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벌어졌다. 장서희 변호사는 이를 영화 저작물을 분류하는 법적 개념 중 ‘공동저작물’로 보고, “후행저작자(최종고 작가)가 선행저작자(초고 작가)의 의사나 관여도와 별개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2차창작물’과는 다르다”는 점을 짚어나갔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6년째 연애중>의 초고 작가가 저작인격권(크레딧 표기)을 침해당했다고 판결했다.

특강을 진행한 장서희 변호사.

영진위의 법률 서비스는 진화 중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영진위 공정센터 내 공정법률라운지는 위와 같은 사례에서 영화인들이 느끼는 법률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으로 1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반영해 새롭게 진화를 꾀하고 있다. 영진위 공정센터는 수도권 영화인과의 원활한 접촉을 위해 운영했던 서울 분소의 역할보다는, 실질적인 기능의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공정법률라운지를 ‘공정환경조성 법률지원 서비스’로 개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종국 영진위 사무국장은 기존 체계에서는 “법률 자문에 공공기관으로서 유의해야 할 사항도 많고, 상담·자문 내용과 축적된 정보가 영화계와 사무국 내부에 원활하게 공유·활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10월부터 분야별 전문 변호사들로 자문단을 구성, 단 건으로 법률 상담을 하던 방식을 개편해 보다 책임성을 가지고 명확한 자문을 수행하는 법률 자문단 공동의 협의체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진위는 2020년 11월 전후를 목표로 개편을 추진 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