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한국영화감독조합, '본명선언' 무단 도용 논란과 관련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입장에 유감 표명
2020-09-25
글 : 김성훈
영화제의 윤리는 현행법 외에는 없는가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이 <본명선언> 무단 도용 논란에 대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입장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지난 9월 21일 감독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감독조합은 양영희 감독이 부산영화제에 요구한 <본명선언> 운파상 취소 건에 관해 부산영화제로부터 특별자문위원으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재심 과정에 참여한 단체로서 심의의 시작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이 양영희 감독의 <흔들리는 마음>의 창작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다큐포럼2020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감독조합이 지지를 선언한 다큐포럼2020은 지난 7월 부산영화제의 입장에 대해 성명서를 낸 바 있다. 당시 다큐멘터리 저작권과 창작 윤리를 함께 고민하는 세미나를 열어 부산영화제에 “<본명선언>의 표절 여부를 밝히고, <본명선언>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양영희 감독에게 사과하고, 표절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다큐포럼2020에 속한 김동령 감독은 감독조합의 성명서를 두고 “반갑고 힘이 되지만, 동시에 이 사건이 잘못됐고, 문제가 있으며, 이상하다고 목소리를 낸 곳이 창작자 집단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며 “얼마 전 로테르담국제영화제가 피해자 입장에 서서 미투 문제를 엄격하게, 신속하게 처리한 모습과 여러모로 대조된다”고 말했다.

감독조합이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월 24일 부산영화제가 공식 SNS 계정에 입장문을 낸 지 약 2개월 만이기도 하다. 지난 1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일본 <NHK> 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40초를 홍형숙 감독이 <본명선언>(1998)에 무단 도용했다는 내용의 글을 <씨네21>에 보냈고, 이후 부산영화제에 <본명선언>의 운파상 취소를 요구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는 “사전 협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의 원본 영상을 도용한 홍형숙 감독에게 윤리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영화제의 시상에 있어 법적 시효가 만료된 점을 이유로 <본명선언>의 수상 철회 요청에 관해서는“법적으로 유효한 답변을 낼 수 없”고, “비교상영회를 위해 <본명선언>을 제공한 것과 관련해 홍형숙 감독에게 사과”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전영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감독조합의 성명서를 두고 “감독조합을 포함해 여러 영화 단체들과 신중하게 논의했고, 법률 자문을 받은 끝에 신중하게 낸 입장문”이라며 “부산의 입장문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감독조합의 성명서를 보니 감독 일부의 의견인지 조합 전체의 의견인지 알 수 없다"라며 “부산은 22년 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영화제 집행위원회 안에 자문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영화계 각 단체장들과 함께 비교 상영회를 포함해 두 차례에 걸쳐 토론해 결론을 내렸다"라고 설명했다. 전 집행위원장은 “<본명선언>의 운파상 취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표절 문제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처벌이나 취소 관련 규정이 영화제에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재발 방지 차원에서 표절 문제가 생기면 수상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을 작품 공모에 안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조합은 부산영화제의 해명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감독조합을 대표해 자문위원회에 참석했던 신연식 감독은 “일단 전 집행위원장의 말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본명선언>의 운파상 수상 취소를 논의하기 위해 각 단체장들이 모인 줄 알았는데,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부산영화제의 자문을 맡은 변호사가 ‘공소시효가 지나서 수상을 취소할 근거가 없다’고 알렸다”며 “창작자의 윤리적 책임과 태도를 논하고 그걸 바탕으로 판단하자는 취지로 모인 자리이지 않나. 이번 문제를 법적으로만 판단하면 부산영화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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