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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하트어택' 이충현 감독,“귀엽고 달콤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020-10-05
글 : 김소미
<하트어택> 사진제공 용필름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 쨍한 화면 위로 스케이트보드를 탄 배우 이성경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온다. <하트어택>을 가득 메울 화창한 낭만과 낙관이 절로 감지되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심장마비를 막기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여자의 이야기인 <하트어택>은 장편 데뷔작인 호러 스릴러 <콜>을 통해 90년대생 감독의 등장을 알린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프로젝트다. 촘촘한 긴장감, 충격적인 반전으로 단편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유명세를 불러일으켰던 <몸 값>, 현재 개봉을 준비 중인 박신혜·전종서 주연의 <콜>을 거쳐 그가 다시 한번 단편의 정수에 도전했다. 10월 5일 왓챠를 통해 공개되는 <하트어택>의 새로운 시도들에 관해 이충현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앞서 작업한 단편영화 <몸 값>과 장편 데뷔작 <콜> 모두 서늘한 스릴러였는데 이번엔 로맨스 장르에 도전했다. 밝고 동화적인 분위기, 로맨스 서사는 숨겨진 취향이었나.

=다분히. (웃음) 서스펜스와 스릴러 위주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사랑스러운 영화도 내 취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어바웃 타임> <라라랜드>같이 음악이 좋거나 리듬감이 뛰어난 로맨스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일이 무척 즐겁다. 언젠가는 이런 장르로 장편영화도 만들고 싶다.

-이번 영화는 소재, 주제, 연출 스타일에 있어 훨씬 더 젊은 세대와 플랫폼을 고려한 듯한 인상이다.

=심의를 받았는데 전체 관람가였다. ‘내가 전체 관람가 영화를 만들다니’ 하며 새삼 놀랐다. <몸 값>과 <콜>은 비교적 자극적인 장르라 스스로도 자극적인 이야기를 연속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연달아 서스펜스와 스릴러 위주의 영화에 잠겨 있다가 그 반대의 것에 끌린 면이 확실히 있다. 또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프로젝트니까 기왕이면 예쁜 이미지들을 담아내자는 마음도 있었다.

-사랑하는 상대를 구하기 위한 무수한 타임슬립의 반복 속에서 ‘하트어택’의 중의적 의미를 활용한 점이 재밌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했나.

=단편영화는 문학으로 비교하면 시와 같다. 그래서 은유를 보는 재미가 중요하다. 애초에 시나리오가 아닌 콘티 작업부터 시작했고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로 접근했다. 타임슬립 장르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기에, 기존 테마를 은유적인 이미지로 다듬어 새로운 재미를 주고 싶었다. 단편의 미학에 집중해 촬영, 편집, 음악이 돋보이는 단편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근심하는 순간조차 사랑스러운 이성경 배우가 컨셉의 적임자로 느껴지더라. 스케이트보드 타는 장면은 대역을 쓴 건가.

=날씨도 변덕스럽고 컷이 많아서 3회차 촬영이 유독 빠듯했다. 농구장 촬영은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땡볕이라 배우와 스탭들이 고생했고. 밤 늦은 시간까지 이성경 배우가 굉장히 밝은 에너지로 스탭들을 이끌어줬다. 영화 내용도 그렇지만 실제 현장에서도 그가 ‘하드캐리’ 해준 부분이 많다. 롱보드 대역은 세계적인 롱보더인 고효주님이 참여해 현란한 솜씨로 놀라움을 안겼다.

-이성경 배우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를 금발의 외국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하트어택>은 온전히 여자주인공의 시선으로만 영화가 진행되고, 주인공이 상대의 심장(마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이야기의 테마다.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는 끝까지 미지의 세계로 남았으면 했다. 실제 배우는 한국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배우인데 이번 작품으로 연기에 처음 도전했다. 처음 미팅할 때 좋아하는 배우를 물어보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 (웃음) 보통의 타임슬립 영화가 그렇듯 <하트어택>도 판타지적 요소가 부각되는데, 지금이 어디고 언제인지에 대한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사진제공 용필름

-과거 MTV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복고적이고 컬러풀한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레트로를 컨셉으로 잡고 영화보다는 주로 뮤직비디오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었다. 프로듀서, 미술감독과 박문치,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를 몇개 주고받았다. 색감이 무척 풍부했던 과거 할리우드영화의 장점들을 다시 가져오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현실 장면과 교차하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의 삽입도 눈에 띄는데.

=미국에 있는 애니메이터와 화상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한 결과다. 마치 스티커를 붙여놓은 듯한 귀여운 이미지들로 연출되어서 만족스럽다. 애니메이션 삽입은 프로듀서의 아이디어였는데 결과적으로 통통 튀는 레트로 컨셉의 우리 영화와 잘 어울렸고, 영화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데에도 충분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삼성과 용필름(<콜>)이 협력해 제작한 단편영화다. 어떻게 합류했나.

=원래 단편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콜> 촬영이 끝난 이후 꽤 시간이 지나 개봉을 기다리면서 몸이 근질근질했던 터라 삼성의 제안을 받고 바로 응했다. <몸 값>의 김상일 촬영감독, 그리고 <콜>의 스탭들이 다시 뭉칠 수 있었는데 짧은 프로젝트여도 스탭들과 다시 조우할 수 있다는 게 기쁘더라.

-본편, 예고편, 메이킹필름, 포스터까지 프로덕션 전반을 스마트폰 촬영으로 진행했다. 어떤 경험이었나.

=처음엔 기존처럼 똑같이 찍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으며 처음에는 모두 얼마간 낯설어했던 것 같다. 곧 빠르게 적응해 속도가 붙었고, 카메라 자체의 무게감과 크기가 작으니 굉장히 유연하게 찍을 수 있었다. <하트어택>은 단편치고는 컷이 많고, 진행 속도도 빨랐다.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등에서 손쉽게 영상 콘텐츠를 만든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이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충분히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세대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기발한 콘텐츠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크기나 기동성에 힘입어 앵글 연출 등에서 새롭게 시도한 부분이 있나.

=부감숏을 찍을 때 막대기에 카메라를 부착해 잠자리채마냥 사용했다. 생각보다 흔들림이 적더라. 역동적인 장면 연출을 위해 스마트폰을 스케이트보드에 부착하거나 농구공에 테이프로 칭칭 감는 등의 색다른 시도를 해봤다. 스마트폰을 부착한 농구공을 하늘 위로 던질때는 고속으로 촬영해 기묘한 이미지를 담았는데, 아래에서 공을 놓치면 어떡하나 내심 조마조마했다. 배우가 한번에 잘 받아냈다.

-10월 5일 왓챠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제가 아닌 OTT 플랫폼에서 단편 공개를 앞둔 소감은 어떤가.

=일반 대중은 단편영화를 아직도 좀 낯설어한다고 생각한다. 왓챠를 통해 공개할 수 있어 영광이고 앞으로도 왓챠나 카카오TV, 유튜브 같은 여러 채널에서도 숏폼 영화 콘텐츠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사진제공 용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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