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의 제작보고회가 열렸던 지난 9월24일, 배우 정유미는 한 손엔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또 다른 손엔 젤리를 쥔 채 인터뷰 장소에 들어왔다. 넷플릭스로부터 출연 제안과 함께 건내 받은 원작 소설은 많은 페이지들이 군데군데 접힌 채 너덜너덜했다. 페이지마다 줄을 친 책을 보니 그가 얼마나 이 책을 신경 써서 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던 정유미는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은 아니다. 원작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생각할수록 이야기의 본질이 어렵지 않아 좋았다”며 “이야기의 여러 매력 중에서도 유독 호기심이 생긴 건 은영이가 욕을 하는 대목이었다. 전작을 통틀어 욕을 한 적이 없었다. 소설이라는 큰 울타리가 있었던 덕분에 처음에는 단순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정유미가 연기한 안은영은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진 인물이다.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부정할 법도 한데 그는 앞만 본다. 안은영의 그런 면모가 정유미에게 큰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도 그걸 구현하는 사람으로서 은영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면서도 살아갈 용기가 생기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은영이를 연기할 수 있어 행운이었고, 나에게 와줘서 너무너무 감사했다”는 게 정유미의 소감이다.
정유미가 지난해 연기한 <82년생 김지영>의 지영과 <보건교사 안은영>의 은영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캐릭터와의 만남이 “운명적”이며 “그들을 표현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 정유미는 두 작품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지난해 <82년생 김지영> 촬영이 끝나자마자 <보건교사 안은영>을 곧바로 찍었고, <보건교사 안은영> 촬영이 끝난 다음날 <82년생 김지영> 제작보고회를 했다는 것. “기분이 묘했다. <82년생 김지영> 제작보고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용실에 들르는데 눈물이 났다. 오늘은 김지영 얘기만 해야겠어, 라고 다짐했는데, 마침 이경미 감독님이 <보건교사 안은영> 촬영 마지막 날 찍은 장면을 캡처해 보내주셨다. 그걸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보건교사 안은영> 배우 정유미, 남주혁, 이경미 감독과 나눈 인터뷰 기사 전문은 씨네21 1275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