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20 미술주간과 <씨네21>이 함께하는 '영화로 만나는 미술'
2020-10-06
글 : 조현나
여성 예술가들이 현대미술을 이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행사 ‘2020 미술주간’이 9월 24일부터 10월 11일까지 개최된다. 올해 6회째를 맞는 미술주간은 전국 7개 권역 30개 도시에서 진행되며, 300여개의 미술관, 화랑,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이 참여해 일상에서 친숙하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또한 올해 미술주간은 ‘당신의 삶이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코로나19 시대에 예술이 주는 치유와 위로의 힘에 주목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미술주간 홈페이지(artweek.kr)에서는 VR과 ASMR 등 새로운 콘텐츠가 제공되고, 미술여행 브이로그를 통해 여행을 떠나는 등 다채로운 온라인 프로그램도 함께 선보인다. 그중 미술주간과 <씨네21>이 협업한 ‘영화로 만나는 미술’ 코너에서는 영화를 통해 쉽고 흥미롭게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통해 네 여성 예술가가 포착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 감상해보자.

아녜스 바르다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관객과 함께 작품을 완성하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건물의 옆면과 앞면에 사람들의 거대한 사진이 붙어 있다. 사진기자 JR과 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협업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두 사람은 대형 인쇄 장비를 실은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외곽을 누비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이를 인쇄해 건물에 부착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폐광촌의 마지막 거주자, 카페의 직원 등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이들의 터전이 작업의 주제이자 전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영화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해왔는데, 이번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즉흥적으로 대상과 장소를 고르고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건물 벽과 길에 작품을 설치한다는 점에서 거리 미술로서의 성격이 강화된 작업이라 볼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전부 담아낸, 말하자면 한 프로젝트의 작업 과정을 작품화한 다큐멘터리다. 그는 오랫동안 사진가로 활동한 감독답게 우연을 포착하는 감각, 하나의 이미지에 강력한 메시지와 유머를 담는 특기를 아낌없이 발휘했다. 나무와 벽돌 등 건물 벽의 물성에 따라 사진에 무늬처럼 새겨지는 요철들은 작품을 관람하는 또 다른 재미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아녜스 바르다가 프랑스를 누비며 작품을 제작한 반면 ‘행위예술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한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대상을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예술가가 여기 있다> 전시 중 일부다. 영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 는 해당 전시와 더불어 21세기의 대표적인 행위예술가 아브라모비치의 대표작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영화가 그녀의 삶과 작품의 연관성을 세심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영화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소 난해한 작품들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영화가 주요하게 짚는 것은 아브라모비치와 옛 연인 울라이와의 관계. 이들은 이별까지 작품으로 승화할 정도로 삶 자체가 예술인 행위예술가들이었다. 전시 첫날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가 수십년 만에 마주앉았을 때, 이들 사이를 오가는 감정은 관객에게까지 오롯이 전달된다. 전시의 관람 인원은 총 850만명.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카메라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마주앉은 관객의 교감, 그리고 이 둘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 등 전시의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비추고 기록한다. 영화에서 아녜스 바르다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전시의 장치와 방식만 정해놓은 뒤 남은 부분을 관객과 함께 채워나간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관객의 삶과 공간, <예술가가 여기 있다>의 퍼포먼스는 관객의 응시가 동반될 때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작업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스크린 너머의 관객까지 그 자리에 참여토록 한다.

애니 리버비츠와 비비언 마이어,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

여기, 오직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두명의 사진가가 있다. 먼저 애니 리버비츠는 배우와 가수, 모델 등 전세계 유명인들의 다양한 초상을 기록해온 사진가다. 비틀스의 존 레넌이 사망하기 5~6시간 전 그와 그의 아내 오노 요코를 촬영한 사진은 잡지 <롤링스톤>의 가장 유명한 표지로 기록됐다. 이후로도 애니 리버비츠는 다양한 뮤지션들의 무대 밖의 모습을 촬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동생 바버라 리버비츠는 영화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을 빌미로 평생 카메라 뒤에 존재했던 애니 리버비츠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롤링스톤>에서 <배니티 페어><보그>에 이르기까지 여러 잡지를 거치며 그의 촬영 스타일이 어떻게 진일보했는지, 영화에 담긴 일련의 변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애니 리버비츠 사진의 특징은 컨셉이 분명하고 인물별 서사를 한컷에 담아낸다는 것이다. 배우와 모델이 힘들어할 때마다 “고통과 추위는 잠시지만 사진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며 최고의 순간을 끌어내는 집요함도 엿볼 수 있다. 수필가이자 비평가였던 수전 손태그와의 관계는 그의 작품에 깊이를 더했는데, 손태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간 애니 리버비츠의 활약을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반대로 비비언 마이어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란 영화의 제목처럼 보물 찾듯 서서히 발굴된 무명의 사진가다. 감독으로도 참여한 존 말루프는 플리마켓에서 우연히 그녀의 필름을 찾아낸 후 “대체 비비언 마이어가 누구야?”라고 질문하며 그녀가 남긴 흔적을 좇는다. 수백개의 미현상된 필름과 천장까지 닿은 신문, 골동품 상점에서 모아온 작은 물건들까지. 조각조각을 꿰맞춰 그려 본 비비언 마이어의 형상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15만장의 사진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비비언 마이어는 길거리의 우는 아이, 일하는 인부의 모습 등 풍경을 순간 포착하는 데 능했으며 피사체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사진들을 많이 남겼다.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렸으나 촬영 때만큼은 인물에게 성큼 다가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토대로 보면, ‘어딜 보든 프레임에 담아서 본다’는 애니 리버비츠의 말은 두 사진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삶과 일에 경계를 두지 않고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것에 평생을 바친 예술가들이기 때문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은 끈기와 집요함으로 구축된 이들의 작품 세계를 현미경처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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