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영의 네오 클래식]
[김호영의 네오클래식]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2020-10-19
글 :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정만세> 愛情萬歲

감독 차이밍량 / 상영시간 113분 / 제작연도 1994년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랑의 가능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파스빈더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삶의 의미를 잃고 감정마저 잃어가는 독일의 전후 세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차이밍량의 영화 <애정만세>에는 그 사랑의 가능성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감정의 미세한 파동만 있을 뿐, 사랑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 차갑고 불편한 시선은 단지 그만의 것일 수 있다. 혹은 삶의 어느 시기에 대한, 가령 아직은 사랑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청춘에 대한 그만의 냉소적인 시선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공허와 고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의 망막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그 끔찍한 고독의 시간을, 희망이 있어 더 쓸쓸한 공허의 시간을 지나왔거나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 침묵 그리고 죽음의 유혹

영화의 배경은 타이베이. 부동산 중개사 메이(양귀매)는 자신이 관리하는 아파트 문에 열쇠를 꽂아둔 채 나온다. 우연히 그것을 발견한 납골당 영업사원 시아오강(이강생)은 열쇠를 훔친 후 몰래 그곳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저녁 시아오강이 그 집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할 때, 시내에서 만난 메이와 아정(진소영)이 갑자기 들어와 정사를 나눈다. 그 후 아정 역시 메이에게서 열쇠를 훔쳐 집에 드나들고, 결국 마주친 시아오강과 아정은 빈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된다. 어느 날 잠을 이루지 못한 메이는 시내에서 아정을 다시 만나 그 집으로 향하고, 집에 있던 시아오강은 침대 밑에 숨어 그들의 정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새벽에 홀로 집을 나와 공원을 걷던 메이는 벤치에 앉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는 말보다 침묵에 의해 지배된다. 배경음처럼 희미하게 들리는 인트로의 짧은 대화를 제외하면, 영화가 시작되고 24분이 지나서야 메이의 첫 대사가 들려온다. 영화의 마지막 24분도 대사 없이 오로지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으로만 채워져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모두 침묵이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밍량의 영화에서 침묵은 현대 대만 사회에 급속도로 유입된 서구 문명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이성적 사고의 핵심인 언어를 거부함으로써 이성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기계문명과 물질주의의 실행을 유예하려는 것이다. 침묵은 또한 고독을 상징하는 기호다. 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마찬가지인 주인공들의 끝 모를 고독과 소외를 강조한다. 말을 할수록 소통이 더 어려워지고 더 이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을 알기에, 이들은 침묵으로 간신히 서로를 붙들고 있다.

침묵하는 개인들의 고독은 단절되거나 고립된 공간들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애정만세>에서 인물들은 자주 거울, 욕조, 화장실, 침대 밑 같은 협소하고 폐쇄된 공간 안에 머물거나 스스로를 가두는데, 그 분리된 공간 안에서 때로는 외로움을 때로는 편안함을 느끼며 일상의 행위들을 이어간다. 물리적으로 언제든 마주치고 부딪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서로 철저히 유리된 채 각자 자신만의 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류>(1997)나 <구멍>(1998) 같은 이후의 차이밍량 영화들에서 더 심화되는 물리적 인접성과 심리적 분리의 이 모순적 교착상태는 대도시 타이베이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관계 양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시작도 결말도 없는 이 영화에서, 삶은 의외로 죽음과 밀착해 있다. 익명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시아오강의 자살은 갑자기 들이닥친 두 남녀의 정사로 중단되고, 목욕을 하다가 보일러 가스가 새는 것을 발견한 메이는 잠시 죽음의 유혹을 느낀다. 그녀는 기회만 되면 삶을 간단히 끝내고 싶은 것처럼, 위험한 대로들을 수시로 무단 횡단하기도 한다. 또 유골 안치함들이 벌집처럼 빽빽이 들어선 납골당 장면 바로 다음에는, 텅 빈 집에서 모기를 잡는 데 열중하고 있는 메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장 차이로 맞닿아 있는 대도시의 일상. 그 안에서는 삶도, 죽음도 한없이 가벼울 뿐이다.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혹은 죽음을 피해 운 좋게 살아가더라도, 별다른 슬픔도 기쁨도 없어 보인다.

공허는 영혼을 잠식한다

무기력한 두 남자와 달리 메이는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린다. 하루종일 분주히 돌아다니며 부동산 세일즈를 하고, 새벽에는 자동차로 광고지 배달도 한다. 또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는다. 노점 식당이나 관리 중인 아파트 혹은 자신의 집에서 국수, 덮밥, 피스타치오, 크림빵 등을 쉴새 없이 입에 넣는다. 섹스에도 적극적이다. 낯선 남자 아정과의 정사에서 그녀가 행위를 주도하며, 먼저 시작해서 먼저 떠난다. 이러한 메이의 부단한 욕망은 어쩌면 포화상태까지 차오른 공허를 누르기 위한 것일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움직이면서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잊으려는 것일 수 있다. 그녀에게 욕망이란 공허의 또 다른 이름이며, 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의 꼬리를 물고 한없이 이어진다. 욕망하면 할수록 더 공허해지는 걸 알지만, 도저히 공허를 견딜 수 없기에 또다시 맹목적으로 욕망에 빠져드는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시아오강도 공허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자살을 시도할 만큼 그는 이미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 역시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그의 욕망은 번번이 좌절된다. 기껏해야 잠든 아정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하는 데 성공할 뿐, 침대 아래서의 쓸쓸한 자위에 만족한다. 대신, 시아오강은 기이한 행동들로 공허와 외로움에 대응한다.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 수박을 쓰다듬다가 진하게 입을 맞추고, 하이힐에 드레스를 차려 입고 여성 흉내를 내며, 빈집에서 혼자 텀블링을 한다. 이후로도 시아오강은 차이밍량 영화들에 계속 등장하면서 기이한 행동들을 보여주는데, 이를 닦은 칫솔로 겨드랑이와 젖꼭지를 닦거나(<하류>) 자위하는 동안 종이를 삼키거나(<구멍>) 웃옷 속에 수박을 넣고 임신부 흉내를 내는(<흔들리는 구름>) 행동 등이 그에 해당한다. 무자비한 생의 공허에 맞서, 그만의 방식으로 버티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메이의 우는 모습을 6분이 넘는 긴 롱테이크 숏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왜 우는가? 감독은 왜 그녀가 아무런 대사 없이 혼자 울도록 내버려두는가? 그녀의 울음은 욕망의 간접적인 해소일 수 있다. 일과 섹스 심지어 음식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눈물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씻어내려는 것일 수 있다. 혹은, 그것은 실존의 고통으로 인한 눈물일 수 있다. 무언가를 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공허한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울음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끝나도 그녀의 울음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까만 암전 위로 들리는 그녀의 울음소리는 지금의 이 고달픈 시간이 미래에도 그대로 이어질 거라는 것을 예고한다. 지긋지긋한 고독과 공허가 청춘을 지나도 변함없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사랑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애정만세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냉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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