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 대한민국 특수영상산업의 메카를 꿈꾼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1박2일 동안 온택트 행사로 열린 ‘2020 대전 비주얼아트테크 어워즈’(주최·주관 대전광역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영화진흥위원회·한국콘텐츠진흥원)는 국내 특수영상산업의 전진기지가 되려는 대전시의 원대한 포부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씨네21>은 이 행사에서 진행된 포럼 ‘대전 융복합 특수영상산업의 미래’와 세미나(‘가상과 현실의 소통, 영화 속으로의 여행’, ‘할리우드 VFX스튜디오의 FX 제작방법영화 <아쿠아맨> 사례를 중심으로’)에 비대면으로 참석해 국내 시각특수효과 산업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지난해에 이어 2회째를 맞은 대전 비주얼아트테크 어워즈는 특수영상산업의 메카를 꿈꾸는 대전의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4차 산업혁명특별시 대전의 ‘융복합 특수영상산업 육성전략’의 한축으로 기획되어 특수영상 시상식, 세미나, 일반인 영상공모전으로 구성, 국내 유일 특수영상 콘텐츠 전문행사로 관련산업 및 업계로부터 주목받은 바 있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이 코로나19 위험에 노출된 콘텐츠(영화나 시리즈) 촬영 현장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0월 16일 오후 1시에 진행된 포럼 ‘대전 융복합 특수영상산업의 미래’에서 나온 얘기들을 살펴보면 아주 불가능한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대전시 문화콘텐츠과 한종탁 과장, 엔진비주얼웨이브 연구소장 송재원 박사, 이승욱 ETRI 책임연구원, 옥임식 화력대전 대표 등 4명의 패널이 참석한 가운데, 포럼 진행을 맡은 박철웅 목원대 교수가 토론에 앞서 국내 특수영상산업의 현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로케이션 촬영이 과거에 비해 조심스러워진 영상산업 상황에서 앞으로 비대면이 가능한 특수영상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할리우드의 VFX스튜디오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호빗> 등의 VFX를 작업한 뉴질랜드의 웨타 디지털은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이미 활용하고 있다. 국내 VFX 산업은 우수한 인력이 많지만 업체들간의 과다 경쟁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VFX, 연구개발(R&D), 특수영상효과(SFX)를 하나로 묶는 시스템 구축이 과제로 남았다.”(박철웅 교수)
이어진 패널들의 발표는 언리얼 엔진을 도입한 버추얼 프로덕션의 가능성을 짚는 자리였다. 엔진비주얼웨이브 연구소장 송재원 박사는 “버추얼 프로덕션은 특수영상산업의 최신 트렌드로, 영화 제작 과정의 모든 불확실성을 뛰어넘어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그린 매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버추얼 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현장에 있는 LED 모니터를 통해 실사와 VFX 화면을 실시간으로 합성하고 렌더링하는 방식의 작업이라 시간과 비용 모두 절감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방송,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송재원 박사의 설명이다. 또 송박사는 “버추얼 프로덕션을 현장에 도입하면 다양한 기술적 이슈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니 이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최고의 VFX 업체 중 하나인 모팩이 언리얼 엔진을 활용해 <예수의 생애>와 <황금판다>, 두 리얼타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
이승욱 ETRI 책임연구원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3D 캐릭터 생성 기술이 산업적으로 효율적인 제작 환경과 비용 절감의 효과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퍼포먼스 캡처 방식을 통해 2D 캐릭터를 다양한 각도로 저장한 뒤 인공지능 기술을 거쳐 3D 캐릭터로 탄생시키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실제 배우만큼 감정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박철웅 교수의 질문에 이승욱 책임연구원은 “모션 캡처 슈트를 착용한 배우가 직접 감정을 표현하는 걸 컴퓨터로 캡처한 뒤 3D 캐릭터에 합성하는 방식이라 실제 배우만큼 생생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는 여자>(2004), <친절한 금자씨>(2005) 등 여러 한국영화의 VFX를 작업하고, <하녀>(1960), <또순이>(1963) 등 고전영화를 디지털 복원한 옥임식 화력대전 대표는 “지금은 모션 캡처카메라, 인공지능, 5G 등 다양한 기술들이 현장에서 활용되고있다. 이 기술들을 통해 부산에서 촬영한 영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서울 사무실에서 확인하는 시대가 됐다”며 “화력대전 또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대전 세트장에서 제작할 SF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대전시 문화콘텐츠과 한종탁 과장은 현재 대전시가 조성하고 있는 융복합 특수영상 콘텐츠 클러스터 계획을 발표했다. 대전시가 3년 전부터 준비한 융복합 특수영상 콘텐츠 클러스터는 2024년까지 엑스포과학공원 인근부지 3만6620㎡에 1288억원을 투자해 특수영상산업의 메카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의 센터를 지어 특수영상 제작스튜디오와 융복합 특수영상 제작실, SFX와 VFX 테스트베드 시설 등을 구축한다. 국내 최대 규모의 스튜디오와 대덕연구단지의 영상 기술 그리고 특수영상 투어리즘 등 세 가지 자원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겠다는 뜻이다. 한종탁 과장은 “향후 10년 안에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영국 파인우드 스튜디오를 뛰어넘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사와 가상 세계를 결합하는 세 가지 방법
세미나 ‘가상과 현실의 소통, 영화 속으로의 여행’에서 이태현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교수는 차세대 VFX 기술을 통해 실사와 가상 세계를 결합, 소통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빅토리아대에서 애니메이션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태현 교수는 미디어 기술은 크게 몰입형, 대화형, 지능형 세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몰입형은 영화나 시리즈를 접하는 사람이 스토리에 빠지는 것이다.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근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가상현실 기술이다. 이 기술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게임산업에서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태현 교수는 대학원에서 학생들이 과제로 제출한, 가상과 실사가 혼합된 비디오 한편을 보여주며 ‘일루미네이션 브라우저’라는 기술을 소개했다. 이것은 실시간 조명 정보를 입수해 시간에 따른 빛의 위치, 광량, 사물에 비친 그림자, 하이라이트 등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효과다. 렌더링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존의 VFX 작업 방식과 달리 “원본 영상의 20% 크기만으로도 원본과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영화나 시리즈 같은 저장 매체라 관객과 실시간 상호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몰입형 미디어와 달리 대화형 미디어는 사용자가 실사와 결합된 가상 세계에서 소통하는 종류의 콘텐츠다. 몰입형과 대화형이 결합된 콘텐츠를 구현하려면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포켓몬 GO> 같은 증강현실 게임이 그렇듯이 가상 세계와 실사가 구분이 안될 만큼 고화질로 결합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거의 실시간으로 렌더링되어야 하며, 사용자 시점으로 3차원 가상 세계를 펼쳐내야 사용자들이 몰입할 수 있다. 그는 “뉴질랜드 명소들을 배경으로 혼합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를 제작해 웰링턴에서 3주 동안 전시했는데 관람객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며 “중요한 디테일을 유지하면서 데이터 사용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해 한국 관광지를 해외에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가상공간에 몰입하는 방식인 몰입형과 대화형과 달리 지능형 미디어는 가상의 세계를 현실로 가져오는 기술과 관련있다. 몰입형, 대화형, 지능형 등 세 가지 미디어 기술을 실제 생활에 접목하면 어떤 일이 가능할까. 이태현 교수는 뉴질랜드 공사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한국에 있는 개발자가 물리적으로 뉴질랜드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예로 들었다. “뉴질랜드 공사 현장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VR과 AR을 접목한 기술을 활용해 한국에 있는 개발자는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서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문제를 VR 영상을 통해 확인한다. 공사 현장에 있는 실무자는 AR 기기를 통해 개발자의 지시 사항과 결합된 현장 영상을 보면서 해결책을 찾아간다.” 이태현 교수가 설명한 이 언리얼 엔진은 이미 한국영화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VFX가 많이 들어간 장면을 찍기 전에 감독, 촬영감독, VFX팀이 모여 프리 비주얼 작업을 통해 긴밀하게 계산하는 것이다. 언리얼 엔진은 앞으로 영역을 더욱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아쿠아맨>의 바닷속 왕국은 어떻게 완성되었나
컴퓨터그래픽으로 물을 진짜처럼 구현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쿠아맨>(감독 제임스 완, 2018)에는 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마지막 세미나 ‘할리우드 VFX스튜디오의 FX 제작방법-영화 <아쿠아맨> 사례를 중심으로’는 DC유니버스 <아쿠아맨>의 물 VFX를 작업한 최길남 VFX 슈퍼바이저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캐나다 VFX 업체인 디지털도메인에 소속된 그는 <아쿠아맨>의 세 가지 주요 시퀀스를 예로 들었다. 일단 아쿠아맨(제이슨 모모아)이 폭포에 들어가서 삼지창을 들고 등장하는 폭포 신은 배우의 얼굴을 제외하곤 모두 VFX 작업을 거쳐 나온 장면이다. “폭포는 물론이고, 물보라, 물이 떨어질 때 형성되는 공기의 흐름, 아쿠아맨이 물을 뚫고 등장하는 움직임, 화면 뒤쪽에 있는 물안개, 물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튕겨나가는 움직임 등 아주 세세한 효과까지 VFX로 만들어냈다”는 게 최길남 슈퍼바이저의 설명이다.
심해에 있는 난파선 또한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배의 실내 4면을 세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육면체 난파선을 펼쳐놓은 뒤바닥, 천장, 옆 벽에 들어갈 인테리어, 소품들을 VFX로 채워넣은 뒤 포장하듯이 조립”했다고 한다. “심해라 배 안을 물로 채워넣었고, 공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계속 움직이며, 물고기가 지나가는 데다가 배의 위치마다 중력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작용되는 모습을 일일이 하나하나 작업했다.”(최길남 슈퍼바이저) 마지막으로 아쿠아맨과 그의 이부형제인 옴(패트릭 윌슨)이 펼치는 대전투 신 또한 풀 CG 숏이다. 최길남 슈퍼바이저는 “바다, 물보라, 물안개 등 물속 전투 신을 구현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물속이라 인물들이 충돌하면 중력의 방향 또한 덩달아 바뀌는 모습까지 실제처럼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10월 17일 열린 시상식에서 영화 <백두산>과 <사자>의 VFX를 작업한 덱스터가 올해의 VFX상 영화 부문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각각 수상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를 작업한 매드맨이 올해의 VFX상 드라마 부문을 차지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VFX를 작업한 콤마스튜디오가 올해의 특수영상 비주얼상을, 영화 <엑시트>의 VFX를 맡은 데몰리션이 올해의 특수영상 이펙트상을 각각 받았다. 이 밖에도 2020 대전 비주얼아트테크 영상공모전에선 <The Train Of Life>(출품자 최영진·곽예린·김다솜)가 대상과 상금 300만원을, <First step>(출품자 이동엽·김영석·이민규·오미나)이 최우수상과 상금 200만원을 수상했다.(자세한 수상 내용은 대전시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김진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은 “이번 언택트 행사에 참여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4차 산업혁명특별시 대전이 글로벌 융복합 특수영상산업의 허브로 나아갈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대전시와 진흥원이 함께 과학의 도시 대전의 우수한 기술력이 K콘텐츠와 융복합하여 대전이 전세계 특수영상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틀 동안 진행된 이 행사는 유튜브 ‘대전비주얼아트테크’ 채널과 홈페이지(http://dva.or.kr)를 통해 다시보기 서비스로 제공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