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감독 데이비드 린치 / 상영시간 147분 / 제작연도 2001년
“(카이에루) 이것만 알아두시오. 내가 당신입니다. 더 설명해주세요, 페소아가 말했다. 난 당신의 가장 깊은 부분입니다, 카이에루가 말했다. 당신의 어두운 부분이지요.”
타부키는 소설 <꿈의 꿈>에서 그가 사랑하는 작가 페소아의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새벽 페소아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이명(異名) 작가 카이에루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타부키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페소아에 대해 상상했고, 그 상상 속에서 페소아는 가상의 작가 카이에루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꿈과 현실과 상상이 아무런 제약 없이 서로 스며드는 세계, 현실의 논리와 법칙이 모두 허물어지는 세계.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이와 비슷한 세계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도 관객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소멸되고 꿈과 현실, 상상이 끝없이 뒤섞이며 증식하는 낯선 세계 속으로 끌려 들어가게 된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꿈의 세계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수의 플롯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개연성과 인과관계를 따지기 힘든 꿈의 세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두 주인공인 다이안(베티)과 카밀라(리타)와 직접 관계되는 사건들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밤 LA 인근 멀홀랜드 드라이브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난다. 간신히 빠져나온 리타(로라 해링)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매다가 시내의 한 집에 숨어 들어간다. 배우의 꿈을 안고 LA에 온 베티(나오미 와츠)는 고모의 빈집에 도착하자마자 숨어 있던 리타와 마주친다. 리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핸드백에 현금 뭉치와 파란 열쇠만 지니고 있다. 베티는 리타를 도와 함께 기억의 실마리를 찾아다니는데, 그러던 중 리타의 옛 거처에서 한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다. 집으로 돌아온 두 여인은 서로에게 감정을 느껴 정사를 나누고, 한밤중에 깨어나 실렌시오 극장을 찾아간다.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두 사람은 베티의 핸드백에 파란 상자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와 파란 열쇠로 그것을 열려 한다. 그 순간, 베티가 사라진다.
잠시 암전이 흐른 후, 한 여성이 잠에서 깨어난다. 몹시 초췌해 보이는 그녀의 이름은 다이안. 조금 전까지 베티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다시 말해, 영화 시작부터 암전 전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그녀의 꿈 이야기다. 이웃에 따르면, 그녀는 3주 동안 사라졌었고 그사이 형사들도 찾아왔었다. 이내, 다이안은 고통스러운 실연의 기억에 빠져든다. 배우인 그녀는 동료 여배우 카밀라(꿈속의 리타)와 연인 사이였다. 그러나 카밀라가 젊은 감독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떠나자 극도의 질투심에 시달린다. 그녀는 한 건달에게 카밀라의 살인을 청부하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끝내 자신의 침대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관객은 영화의 마지막 20여분을 남겨두고서야 이전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주인공 다이안의 꿈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그것도 확실치 않다. 아마도 그 꿈은 다이안이 수면상태에서 꾼 꿈과 깨어 있을 때 빠져든 상상 또는 환각을 모두 포함하는 것일 것이다. 혹은, 그녀가 죽어가면서 경험하는 순수한 정신적 사건들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이 꿈의 세계는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현실 세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서 실패했던 두 여인의 사랑이 꿈에서는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현실에서 카밀라가 다이안의 캐스팅에 도움을 주었다면 꿈에서는 베티가 리타를 돕는다. 현실에서 다이안의 연인을 빼앗는 감독은 꿈에서 유능하지만 치졸한 인물로 등장하며,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다이안은 꿈속에서 모두의 찬사를 받는 배우 지망생으로 묘사된다. 한편 다이안이 식당에서 청부살인을 의뢰할 때 잠깐 보았던 한 남자가 꿈에서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는 인물로 등장하고, 그 식당의 종업원 이름 ‘베티’는 꿈속에서 다이안의 이름이 된다.
이처럼 영화 속 꿈의 세계에서는 좌절되거나 억압되었던 현실의 욕망이 굴절되어 투사되기도 하고, 현실의 다양한 인물과 오브제들이 그 역할이나 용도가 변경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또,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던 낯선 인물들과 이미지들도 곳곳에 끼어들어 있다. 꿈은 현실과 촘촘히 얽히고설키면서도, 현실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원리에 따라 흘러가고 있는 또 하나의 광활한 세계인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꿈의 구현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시네아스트로서 린치가 쌓아온 다양한 특징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그의 상상 세계를 상징하는 공간인 ‘빨간 방’ , 즉 붉은 커튼의 방이 <트윈 픽스>(1992)에서처럼 기묘한 미스터리를 내포한 공간으로 등장하고, 전작들에 비해 약화되었지만 잔인하고 엽기적인 이미지들에 대한 독특한 취향도 틈틈이 엿보인다. 개인의 꿈을 억압하는 평범한 삶의 폭력성은 환각 속에서 다이안을 덮쳐오는 노인 부부에 의해 표상되며, 자본이 지배하는 할리우드와 위선과 기만으로 가득 찬 ‘작가 감독’에 대한 비판도 특유의 시니컬한 묘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 회화적인 색채 구성과 감각적 편집, 풍부한 정서의 사운드 등은 탁월한 형식주의자이자 종합적 예술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영화적 매혹을 찾아서
그럼에도 영화의 힘은 확실히 꿈의 세계를 향해, 혹은 꿈과 상상과 환각을 모두 포함하는 ‘환상의 세계’를 향해 수렴된다. 전작인 <로스트 하이웨이>(1997)에서도 감독은 현실의 이면에 달라붙어 있는 환상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에서 그 탐구는 한층 더 깊고 정교해진다. “모든 것은 환상일 뿐이다.” 이는 영화 속 실렌시오 극장의 사회자가 객석을 향해 던지는 말이지만, 감독 린치의 말이기도 하다. 그에게 영화란 환상 그 자체이며, 영화 창작 역시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타부키와 페소아에게 글쓰기가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영화 만들기는 “이성으로부터 벗어나 불가사의한 것과 가늠할 수 없는 것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기 영화인들은 영화를 ‘꿈의 예술’이라고 불렀다. 한편으로는 영화가 인간의 꿈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장치라 여겼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가 다른 어떤 매체도 지니지 못하는 마법적인 힘을 내포하는 기계라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꿈을 현실과 등을 맞대고 있는 또 다른 세계로 인식했는데, 영화만이 그 두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고 간주했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오래전에 잊혔던 초기 영화인들의 이같은 꿈을 완벽에 가깝게 실현시킨다. 현실과 맞물려 있는 꿈의 세계를 생생한 이미지들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초기 관객을 사로잡았던 ‘영화적 매혹’을 일시적으로나마 되살려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관객이 느꼈던 그 매혹, 현실이 꿈처럼 눈앞에 다시 펼쳐지고 모든 비현실적인 것들이 실재보다 더 그럴듯하게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느꼈던 그 매혹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