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벽돌공에서 본드가 되기까지. 굿바이, 제임스 본드 [숀 코너리 추모①]
2020-11-06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배우 숀 코너리, 10월 31일 향년 90살로 별세
사진제공 SHUTTERSTOCK.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화배우 숀 코너리가 10월 31일 토요일, 90살로 세상을 떠났다. <젠틀맨 리그>(2003)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들에 따르면 노화로 생긴 질병 탓에 한동안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에 비극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는다. 따스한 바하마의 저택에서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인 채 비교적 평안하게 잠든 상태로 세상과 이별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평소 스크린에서 보여주던 변화무쌍한 모험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특유의 우아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떠오르는 작별이다.

‘원 앤드 온리’ 제임스 본드

배우 숀 코너리의 일생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일화들이다. 건설장비를 운전하던 아버지와 청소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17살 때에는 학업을 포기하고 해군에 입대했고, 건강 문제로 제대한 후에도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중 니스칠을 하거나 중고차를 팔거나 벽돌공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1986년 <시카고 선타임스>와 인터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자주 떠올리는 이유는, 실제 그의 삶과 대중의 상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007 시리즈’에 캐스팅되던 당시 원작자 이언 플레밍도 같은 이유로 숀 코너리를 반대했다고 한다. 육체적 장점을 가진 신인보다는 캐리 그랜트나 데이비드 니븐처럼 우아한 배우들이 ‘제임스 본드’에 더 어울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상은 어긋났다. 지금에 이르러 단 한명의 제임스 본드를 꼽으라면 누구라도 숀 코너리를 지목할 것이다. 거칠고 무례하며 어찌 보면 잔인한 특수요원 역할에 이만큼 적합한 배우는 없다. 외향적조건, 단순히 아름다운 얼굴과 190cm가 넘는 큰 키 때문만이 아니다. 숀 코너리가 지닌 당당하고 여유로운 모습은, 삶에 도전해서 정정당당하게 승리한 자가 가지는 특유의 분위기처럼 보인다.

1962년부터 1983년까지 총 7편의 ‘007 영화’에서 그는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그사이 조지 라젠비가 한 차례 주역을, 로저 무어가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본드 역할의 기반을 다진 것은 단연 숀 코너리였다. 시리즈가 무려 반세기 넘게 지속되는 데 끼친 그의 공로는 지대했다. 물론 작품의 성공을 통해 그 자신 역시 최고의 아이콘이 됐다. <공식 제임스 본드 007 무비북>(1987)에 따르면 ‘영화 애호가가 가장 좋아하는 007 영화’에는 모두 그의 출연작들이 언급된다. 1편 <007 살인번호>(1962)와 2편 <007 위기일발>(1963), 3편 <007 골드핑거>(1964)와 4편 <007 선더볼 작전>(1965)은 초기작이면서 모두 그의 주연작이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이 영화화된 것은 실상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공로가 컸는데, 당시 히치콕이 유행시킨 1960년대 스파이물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 특성을 007 시리즈도 공유한다.

첫째, 카프카 소설처럼 어둡고 유머러스한 이중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인공 캐릭터가 특히 그렇다. 스스로 자신이 아닌 스파이의 가상 상황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둘째, 섹슈얼한 측면에서 마초적인 위험성을 보인다. 히치콕이 이를 신경증적 상황으로 몰고 간다면 제임스 본드는 힘의 쇠퇴에 대한 불안을 여성 캐릭터를 통해 상쇄시켰다는 점이 다르다. 셋째, 섹슈얼한 상황과 연계되는 구원의 모티브가 활용된다. 사실 007 시리즈의 여성 캐릭터는 장르의 규칙처럼 극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자칫 험난해 보이는 배경을 고급스럽게 바꾸고, 주인공을 죽음의 충돌로 이끈다.

시리즈의 아이콘에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다

과거 히치콕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선보인 그리스 남신의 역할을 숀 코너리가 잇고 있다고 설명해도 될 것이다. 1964년작 <마니>에서도 그는 불완전한 부르주아 남성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연기했다. 당시 히치콕을 인터뷰하던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러한 그를 가리켜 ‘모순’이라 지적했다. “나는 그 영화에서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숀 코너리는 대단히 멋있고 야수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어서 영화의 섹슈얼한 주제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시나리오 대사에는 그런 면이 부각돼 있지 않습니다. 코너리가 맡은 마크 로트랜드는 여성을 보호하는 관대한 존재로밖에 비치지 않아요.” 더 길게 설명되었어야 할 캐릭터의 내면이 주인공의 외적 특성 때문에 어느 정도 보강되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숀 코너리가 가진 카리스마, 마초적인 성향은 그를 이중적인 매력으로 감싼다. 여성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는 연약한 내면과 불완전한 남성의 야망이 당대의 젊은 모습에서 정력적으로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아웃랜드>(1981)를 통해 그가 보여줬던 도전은 흥미롭다. 1973년 <자도즈>에서 꾀한 레퍼토리의 다양화가, 제임스 본드의 모험을 끝낸 후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배우의 새로운 목표가 되어 있었다.

<아웃랜드> 개봉 당시 대중은 <스타워즈>(1977) 1편의 영향으로 SF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상황이었다. 당대 제작사의 기대만큼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숀 코너리 개인에게만큼은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제임스 본드와 달리 실패에 면역이 없어 아파하는 인물이었고, 게다가 <하이 눈>(1952)의 리메이크작이 가질 법한 고전적인 분위기를 담보했다. 1987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을 통해 숀 코너리가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던 것은, 007 이후에 시도했던 다양한 연기 변신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그는 시리즈의 아이콘에서 벗어나 스스로 배우 자리에 오른다. 독자적으로 영화사에 새겨지기 시작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대중에 각인된 숀 코너리는 ‘연기가 부족하지 않은, 세계적 배우이자 기품 넘치는 남성 연기자’이다. 제임스 본드라는 도상학적 위치와는 별개로, 그는 우아하고 표현도가 높은 남자배우 목록에 포함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끌어들인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의 모험 덕분일 수도 있고, 마이클 베이의 초기 성공작 중 하나인 <더 록>(1996)의 성과일 수도 있다. 이후에 개봉한 <파인딩 포레스터>(2001)의 ‘윌리엄 포레스터’ 역할에서 보듯, 중년 이후 숀 코너리는 비밀스럽고 지적이며, 인생의 비밀을 젊은이들에 전수하는 존경할 만한 노교수 역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해 있다. 2000년에 그가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던 것은 그 연장선상에 놓인 해석의 코드 중 하나일 것이다.

과거 세련된 스포티함을 자랑하던 배우는, 어느덧 노신사의 이미지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했다. 1989년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본드의 이미지를 지우려고 시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당시 발언은 틀린 것처럼 들린다. 제임스 본드가 타던 차 ‘애스턴마틴’이나 전용총 ‘발터 PPK’ 같은 물건들은 2000년 이후 그의 모습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작가 J.D. 샐린저가 떠오르는 ‘단절감, 언뜻 비인간적이지만 느껴지는 휴머니즘’이 노년의 그와 더 가깝다. 이런 그의 얼굴이 이제는 노스탤지어가 된다. 깊은 목소리, 무엇보다 은은한 풍채에서 풍기던 분위기를 관객은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제공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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