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이비티스>의 두 주인공은 많은 면에서 참 다르다. 중산층 부부의 외동딸로, 갤러리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모던한 저택에 사는 밀라.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격리 명령을 받고 거리에서 마약을 사고파는 모지스. 죽음을 앞둔 10대 소녀 밀라가 우연히 모지스를 만나 경험하게 되는 이 첫사랑 이야기에는 두 사람의 성격, 배경, 외모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간극만큼이나 시대적·장르적으로 멀리 떨어진 음악들이 공존한다.
일단 밀라의 엄마가 피아니스트라는 설정에서 클래식 음악이 자연스레 나온다. 밀라 역시 엄마의 간곡한 권유에 바이올린을 배우는데, 관대한 선생님을 만난 덕에 이들의 레슨 시간에는 아프리카 바이올린 사운드와 힙합이 접목된 컨템포러리 뮤직이 흐르기도. 밀라와 모지스가 함께 보내는 시간 역시 어느 때는 70년대 영국 포크 음악으로, 어느 때는 10대 뮤지션이 만든 청량한 비트의 팝 음악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제각각인 음악들이 절묘히 어우러진 작품이 몇이나 될까. 이 작품의 장점을 꼽는 누구라도 음악 이야기는 빼놓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베이비티스>의 O.S.T 음반이 단 네곡으로 이루어졌다는 건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삽입곡 하나 없이 오리지널 스코어(해당 영화를 위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연주음악)로만 이루어진 이 12분짜리 미니 앨범은 영화의 핵심이 되는 정서와 장면을 되살리는 키노트 같은 곡들로만 채워졌기 때문이다. <Into the Sea>의 예를 들어볼까. 엄마 안나는 둘만의 언어, 즉 음악이라는 더 내밀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대화하기를 원하지만 미래가 없는 삶에서 악기를 배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딸 밀라는 바이올린 연습에 시큰둥하다. 모녀 관계를 상징하는 이 곡은 두번 등장하는데, 처음은 애달픈 마음이 새어나오듯 안나 혼자 쓸쓸히 피아노 파트를 쳐보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음악과 이야기가 서로로 인해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니까.
PLAYLIST+ +
더 고 비트윈스 《16 Lovers Lane》
더 고 비트윈스는 <베이비티스>의 스코어를 담당한 뮤지션 아만다 브라운이 소속된 호주의 록밴드. 이 음반은 그들이 1996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이다. 전자음악 사운드부터 현악 4중주까지 네곡의 스코어가 각기 다른 색채를 뿜는 건 아만다 브라운이 그만큼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밴드에서 바이올린, 오보에, 기타, 키보드, 백보컬을 맡는 동시에 편곡도 담당한다.
바시티 버니언 《Just Another Diamond Day》
영국의 포크 뮤지션 바시티 버니언이 1970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 수록곡 <Diamond Day>가 영화에 삽입됐다. 발표 당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2000년을 전후로 전설의 희귀 명반으로 소문이 나 고가에 거래되었고, 한장의 음반만 발표한 후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바시티 버니언은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30년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