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카일리 미노그를 모르는 20대 친구에게 “카일리 미노그는 호주 엄정화 같은 존재야”라고 했더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1988년에 데뷔했으니 이제 카일리 미노그는 팝 아이콘이라기보다 전설 속 이름에 가깝다. 그런데 카일리 미노그도 마돈나처럼 전설에 머물지 않는다. 때가 되면 지치지 않고 나타나 새로운 세대에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 데뷔 13년 후, 2001년에 발표한 싱글 《Can’t Get You Out of My Head》는 그녀의 이름보다 훨씬 더 유명한 후렴으로 전세계 어딘가에서 여전히 흐르고, 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올해 발표한 15번째 신보 《DISCO》 역시 정통 팝 디스코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낸다.
지난해부터 해외 팝 시장에서는 유난히 디스코가 강세를 띠는데, 올해 들어 레이디 가가, 두아 리파, 제시 웨어 등 여성 팝 뮤지션은 물론이고 방탄소년단까지 디스코 베이스의 레트로 팝에 가세했다. 이 가운데 카일리 미노그는 《DISCO》에서 70년대와 80년대 디스코 절정의 시기를 온전히 함께했던 음악 팬이자 뮤지션으로서의 취향을 드러내며 어떤 음반보다도 맛깔난 ‘오리지널 팝송’으로 승부를 봤다. 뱅글뱅글 미러볼과 휘황찬란한 폴리에스터 패브릭의 의상을 꺼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타이틀곡 <Magic>은 귀에 꽂히는 쉬운 멜로디와 중독적인 후크로 지금 당장이라도 노래방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든다.
지난해부터 음반 작업을 시작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런던 집에서 혼자 나름 고군분투하며 하우스 레코딩으로 이번 앨범을 마무리해 내놓게 되었다는 카일리 미노그. 디스코 에라(Era)의 모든 요소를 끌어다쓴 음반답게 이번 카일리 미노그의 노래들은 왠지 지금까지 사랑받았던 수많은 디스코 팝 히트곡들을 소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팬데믹의 날들이 끝나지 않고 코로나 블루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는 11월, 카일리 미노그의 신보를 시작으로 알고리듬을 따라 한번쯤은 디스코파티를 열어봐도 될 듯하다.
PLAYLIST+ +
제시 웨어 <Spotlight>
카일리 미노그의 신보가 나오기 전까지, 올해 가장 놀라웠던 팝 앨범은 레이디 가가나 두아 리파가 아닌, 영국 출신의 제시 웨어였다. 2021년 그래미 어워즈 후보로 점쳐지기도 하는 제시 웨어의 음반 《What’s Your Pleasure?》에서 훵크(Funk)와 댄스가 적절하게 섞인 <Spotlight>는 올해 나온 디스코와 레트로 팝송 중에서도 가장 탄탄하게 만들어진 곡이다.
엄정화 <D.I.S.C.O>
엄정화의 수많은 히트곡 중에서도, 미국의 마돈나나 호주의 카일리 미노그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최고의 노래와 춤으로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노래 <D.I.S.C.O>. 팝 디스코의 유행 속에서 발표되는 신보들 사이에 슬쩍 끼워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2020년 디스코 플레이리스트의 필수 트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