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넷플릭스로 가려는 한국영화, 종각부터 종로5가까지 줄 섰다고?
2020-12-02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한국영화의 넷플릭스행은 영화 산업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꾸고 있나
<승리호>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하지 못한 대형 투자배급사의 영화 편집본을 이미 다 봤다고 한다.”(제작자 A씨) “매주 한국영화 80편의 편집본과 시나리오가 넷플릭스에 접수된다는 얘기가 있더라.”(프로듀서 B씨) 현재 충무로에서 돌고 있는 이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넷플릭스행을 문의하려는 한국영화의 줄이 넷플릭스 코리아가 위치한 종각에서 종로5가까지 이어졌다”는 말도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은 않는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관객이 극장을 찾지 않는 현재 산업 상황에서 그만큼 넷플릭스 문을 노크하려는 한국영화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극장이 언제 정상화될지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극장 개봉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니 제작비라도 보전하는 편이 더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극장 개봉을 계획했다가 넷플릭스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알려진 영화는 12월 초 현재 <승리호> <차인표> <원더랜드> <낙원의 밤> 등 총 4편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일단 제작비 240억원이 투입된 조성희 감독의 신작 <승리호>(제작 비단길)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에 단독 공개하기로 지난 11월 20일에 발표됐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첫 공개된 <콜>(감독 이충현)과 같은 방식이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승리호>를 넷플릭스에 거래한 금액은 제작비의 15~20% 상회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승리호>

선 극장 개봉 생각했던 <승리호>가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선택한 까닭은

애초에 <승리호>는 지난 여름 시장에 극장 개봉한 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배급할 계획이었다. 지난 5월 <승리호> 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대표 유정훈)는 마켓에서 개별 국가별로 해외 배급권을 판매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넷플릭스와 해외 판권을 거래한 사실이 알려졌다. <승리호>의 해외 판권에서 제외된 국가는 당연히 넷플릭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중국이다. 중국의 메이저 투자제작사 화이브라더스(대표 왕중뢰, 왕중군)가 <승리호> 제작비의 20%(약 40억원)를 투자한 조건으로 중국 극장 배급권을 가진 까닭에 중국 극장가가 재개되고 광전총국의 수입영화 쿼터와 검열이 통과되면 중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이었다. 물론 이 조항은 지금도 유효하다. 메리크리스마스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 검열이 통과되면 중국 극장가에서 개봉한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면 <승리호>의 중국 개봉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스타였던 배우 차인표가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영화 <차인표>(감독 김동규 제작 어바웃필름)는 내년 1월 1일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 또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중소 배급사의 라인업이었던 <사냥의 시간>과 달리 <차인표>와 <낙원의 밤>, <콜>은 롯데엔터테인먼트와 NEW라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라인업이라는 점에서 차이다.

<원더랜드> 배우 정유미.

극장에서 먼저 공개될 예정인 <원더랜드>

앞의 세 편이 넷플릭스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면, <만추>(2010) 이후 김태용 감독의 10년 만의 상업영화이자 박보검, 수지, 공유, 최우식, 정유미, 탕웨이 등의 출연으로 화제가 된 <원더랜드>(제작 영화사 봄)는 “극장 개봉한 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는 방식”으로 논의 중이다.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만큼 국내에서 극장 개봉을 하되, 코로나19가 장기화된 상황에서 개별 국가별로 해외 판권을 판매하기보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한 듯하다. 이것은 <승리호>가 애초에 그렸던 계획과 같은 해외 배급 방식이다.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의 투자작 <모럴센스>와 <수리남>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 작품이라면,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 관여하고, 직접 투자하는 작품들도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9월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설립해 한국 콘텐츠를 직접 기획·발굴·투자·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국, 스페인, 브라질 등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많은 국가에서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고, “한국 또한 콘텐츠 투자 및 제작이 늘어나다보니 이 업무를 집중할 수 있는 별도의 법인이 필요”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의 이런 움직임은 그리 새삼스럽진 않다. 이십세기 폭스나 워너브러더스가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일본, 한국, 프랑스, 홍콩, 멕시코, 러시아 등 세계 여러 국가에 로컬 프로덕션을 설립해 로컬영화를 제작한 현지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의 첫 기획·투자작은 인기 로맨틱 코미디 웹툰 <모럴센스>의 영화화 버전이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변성현 감독(<불한당>)의 신작 <킹메이커>를 제작한 씨앗필름(대표 이진희)이 넷플릭스와 함께 기획 단계부터 시나리오 작업, 감독 선정 등 제작 공정의 모든 과정들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좋아해줘>(2016)를 연출한 박현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수리남>(제작 영화사 월광)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 민란의 시대> <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의 첫 시리즈다. 남미 지역에서 대규모 마약 조직을 운영해온 한국인 마약왕이 7년 간의 추적 끝에 적발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배우 황정민과 하정우가 출연하기로 해 최근 화제가 됐었다. 이밖에도 넷플릭스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사회 비판적인 다큐멘터리 제작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콜>

한국영화 투자배급사의 위기... CJ, 쇼박스 언제까지 버틸까

이러한 넷플릭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현재 한국 영화산업은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해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투자했던 4년 전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극장이 산업의 주도권을 쥐었던 그때와 달리 넷플릭스만이 관객에게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통로다. 관객들이야 극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안방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지만, 감독이나 프로듀서 같은 창작자가 외주 프로덕션에 그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현재 충무로 안팎에서 팽배해있다. 제작자 C씨는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가 직접 기획, 투자하면 창작자에게도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라며 “모든 작품이 넷플릭스 투자를 받을 수 없고, 투자를 받더라도 알려진 것처럼 넷플릭스가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게 아닌 까닭에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프로덕션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낙원의 밤>

이처럼 극장이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넷플릭스 같은 OTT가 콘텐츠에 직접 투자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투자배급사의 역할이 사라지게 된다. 기본적으로 투자배급사는 대형자본이 필요한 영화에 제작사와 극장 사이에서 자본을 투자하고 리스크를 감당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 모델인데, 넷플릭스 같은 다양한 플랫폼들이 콘텐츠에 직접 투자하면 중간에서 돈을 대는 브로커 역할인 투자배급사는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NEW가 최근 <콜>과 <낙원의 밤>을,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차인표>를 넷플릭스로 넘긴 걸 보면 CJ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제작자 D씨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극장 공개를 생각했던 영화의 개봉이 내년으로 미뤄졌고, 현재 후반작업 중이거나 촬영 중인 작품들은 내후년으로 순차적 개봉을 한다고 해도 적게는 1년 반, 길게는 2년 넘게 걸린다”고 말했다. 제작자 E씨는 “CJ엔터테인먼트는 한국 영화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의 대의명분이 중요한 만큼 라인업의 일부를 넷플릭스 같은 OTT에 쉽게 넘기진 못할 듯”이라고 말하면서 “쇼박스의 경우 몸집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라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프로듀서 F씨는 “CJ엔터테인먼트는 해외 배급 같은 자체 네트워크가 많이 엮여 있는 까닭에 넷플릭스와 선뜻 거래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의 파죽지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듯하다. 한국 영화산업이 넷플릭스가 키를 쥔 질서로 재편될지, 기존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진열을 재정비해 새로운 국면을 맞을지는 현재 코로나19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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