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지난 3월 이후 인도 극장가는 긴 여름과 우기를 지나 마침내 희망의 기지개를 켰다. 물론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황이 크게 호전되지 않은 가운데 객석의 반을 채워 걱정과 불안감이 적지 않다. 게다가 다가오는 연말연시, 그간 미뤄둔 국내외 대작들이 개봉예정으로, 극장가는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럼에도 인도 영화계는 극장의 재개관을 고무적으로 본다. 단지 영화가 인도 사람들의 낙이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극장의 셧다운 기간 동안 영화산업의 타격이 컸다. 무수한 작품의 개봉이 연기되거나 제작 취소되고 전설적인 배우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런 가운데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안으로 떠오르며 관객과의 접점을 유지했으나, 많은 신작을 공개하기는 어려운 한편 영화에 목마른 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극장 문을 다시 열며 개봉 일정이 속속 업데이트되고 새 영화의 제작 소식까지 들려오는 건, 아직 인도 영화시장이 살아 있다는 반가운 생존 신호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갈증은 크지만, 이런 시기에 비로소 눈길을 끄는 영화도 있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나 인도에선 이제야 개봉한 영화 <서>(Sir)가 그렇다. 현지 정서에 맞지 않다고 여겨졌거나 큰 영화에 밀린 탓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와 인도의 합작 영화로 유럽에서 먼저 알려졌다. 영화는 건축가와 그의 집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가정부와의 오묘한 로맨스를 그린다. 한마디 대사로 내용을 추릴 만하다. 친구가 말한다. “넌 네 가정부와 데이트할 수 없어!” 다만 이렇게만 요약하면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 신분 차이를 넘어선 사랑을 그린 진부한 로맨스, 또 하나의 <신데렐라>나 <귀여운 여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뻔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인은 어디에도 없다. 부유한 남성과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가정부. 그러나 젊은 과부로 굳세게 살아오며 확고한 꿈을 키운 여인은 오히려 자신의 고용주에게 영감을 주는데,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키는 솔메이트가 된다.
인도가 배경이란 점을 생각할수록 둘의 조합은 더욱 절묘하다. 동화나 판타지가 아닌 실제 생활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의 가정부’다. 영화는 계급사회에 대한 화두도 던지지만, 꼭 그런 관점으로만 보지도 않을 일이다. 인도에서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을 쓰는 게 보통이다(집사, 요리, 청소 등 각기 역할을 세분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혼자 모든 가사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인 반면 인건비는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내 집안일에 두손 들고 도와줄 사람을 부르면, 그들이 다가와 꺼내는 첫마디가 바로 ‘서?’(Sir)일 것이다. 뭘 도와줄까 묻는 것이다. <서>는 요즘 영화로는 드물게 노골적인 감정 표현이나 묘사가 거의 없다. 절제된 표현 속에서 그들이 주고받는 미묘한 감정은 상상할수록 아슬아슬하고 긴장되며 관능적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한다. “언제까지 날 ‘서’라고 부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