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를 연이어 성공시킨 스타PD 이응복 감독이 넷플릭스와 처음으로 손잡고 괴물이 등장하는 아포칼립스 크리처물 <스위트홈>(12월 18일 넷플릭스 공개)을 연출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은 내면의 욕망으로 인해 사람들이 괴물로 변해가는 세상, 철거 직전의 아파트 그린홈 주민들이 괴물과 맞서 생존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욕망을 먹고 자란 괴물, 괴물화가 진행 중인 사람, 그리고 아직 싸울 힘이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존의 한국 드라마에선 보기 힘든 비주얼로 펼쳐진다. “괴물이 등장하지만 인간을 이야기하는 드라마”라는 이응복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연출은 처음인데, 작품 공개를 앞둔 기분은 어떤가.
=하루에 한 회차씩 온에어가 되는 방송 드라마의 경우 마지막까지 피드백을 받으며 작품을 완성한다. <스위트홈>은 온전히 다 만들어놓고 한꺼번에 10회차를 공개하는 방식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후반 작업을 했다. 어떤 게 더 장점이 많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내게는 이 방식 또한 흥미로웠다.
-<태양의 후예>가 사전제작 드라마였기 때문에 미리 얼마나 완벽한 그림을 그려놔야 하는지는 경험치가 있었을 것 같은데.
=<태양의 후예>는 완전한 사전제작은 아니었다. 이번엔 완전한 사전제작이어서 조바심도 생기고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되고 겸손해지더라.
-김칸비, 황영찬 작가의 원작 웹툰에선 어떤 점이 매력적이었나. 더불어 원작자들이 드라마에 반영해줬으면 하고 얘기한 것들이 있는지. 김칸비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웹툰과 드라마의 결말이 달랐으면 좋겠다고 했다던데.
=웹툰이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리즈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서로의 결말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이 당부한 건 메인 캐릭터를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독자들이 캐릭터의 이름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였다. 원작 웹툰을 숨도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괴물이 등장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졌다. 혹은 잔혹동화이기도 하고. 거기에 스릴도 있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웹툰이었다. 사실상 괴물은 백그라운드라 생각했고 진정하게 다루는 건 인간이라 생각했다.
-<미스터 션샤인> <도깨비> <태양의 후예>를 연출한 이응복 감독이 만드는 크리처물과 아포칼립스물은 어떨까 궁금증이 컸다. 언급한 드라마에는 애틋하고 각별한 로맨스가 자리하고 있는데, <스위트홈>은 내용이나 장르의 측면에서 이전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세 작품 모두 큰 틀에선 휴머니즘을 다루고 그 안에 로맨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가 돋보인 건 배우들과 작가님의 공이 커서였던 것 같고. <스위트홈>은 그전에는 깊게 다루지 않았던 이웃이나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타성에 의존하지 않고, 사랑의 의존도를 빼고, 인간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소재이지 않았나 싶다. 남녀간의 사랑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간애로 나아가는 걸 생각했다. 장르의 측면에선, 처음엔 재밌다고 느꼈는데… 마음을 먹고 잘 해보자 하다가도 4개월에 한번씩 그만둘까 생각했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었다. 배우들과 스탭들 모두 이 장르가 처음이었는데, 처음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 재미와 스릴과 감동을 느끼더라. 거기에 힘을 받아서 포기하려던 나약한 마음을 붙잡고, 괴물화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나.
=얘기하면 길어진다. 휴지도 필요하고. (웃음) 한국에선 이런 규모의 크리처물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은 순간이 많았다. 괴물 특수분장을 잘 할 수 있는 팀이 국내엔 없어서 해외 업체를 알아봐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어벤져스> 시리즈 등을 작업한 레거시 이펙트와 <기묘한 이야기> 등에 참여한 스펙트럴 모션 같은 해외의 특수·시각효과 업체와 긴밀히 협업했다. 등장하는 괴물의 수가 많고, 그 모습과 움직임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야 했기 때문에 크리처의 개체 수만큼 고민도 늘어났다. 괴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분도 국내엔 거의 없어서 <America’s Got Talent>에 출연해 거미인간으로 이름을 알린 트로이 제임스도 섭외했고, 안무가 김설진씨도 여러 괴물의 움직임을 표현해줬다. 이 모든 과정이 처음이라 의사 결정 과정에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혔다.
-표현의 수위, 이야기의 호흡, 멀티 캐릭터의 운용 방식 등에서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드라마 작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도하는 느낌이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소재였다. 이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서, 처음엔 안일하게 괴물 형상에 비닐 랩을 씌워서라도 찍겠다고 했다. 괴물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이 중요한 작품이니까. (웃음) 그런데 넷플릭스가 합류하면서 괴물에 대한 스탠다드가 강조됐고, 아낌없는 지원을 통해 제대로 크리처물을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소재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건 창작자뿐 아니라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고립과 생존을 다룬 작품들, <#살아있다> <반도> <킹덤> 시리즈 등이 연이어 나왔는데, 기본적으로 좀비물이나 아포칼립스물은 ‘재앙에 맞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집중한다면 <스위트홈>은 ‘무엇이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가’ 혹은 ‘인간답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힘을 싣는다.
=말씀하신 대로다. 인간과 괴물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이런 이야기를 전 회차에 걸쳐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왜 <스위트홈>이라는 원작 웹툰을 좋아하는지, 왜 생존과 고립의 문제를 다룬 작품에 빠지는지 생각해봤는데, 외로움 때문인 것 같다. 외로우면 소통하면 되는데 소통조차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현수를 통해 잘 표현되길 바랐다. 너무 오그라들지 않게, 과하게 주제의식이 드러나지 않게, 너무 윤리 교과서적이지 않게. 그런 점들이 기존의 아포칼립스물과는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나 싶다.
-가정폭력 문제나 경비원을 상대로 한 갑질 문제, 아동 성범죄자 문제 등 최근의 사회적 이슈도 적극적으로 이야기 안에 끌어들였다.
=자극적인 소재로 접근한 것은 절대 아니다.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이슈가 따라왔던 것 같다. 그린홈의 주민들이 서로를 모를 땐 상대에게 두려움과 미움을 가지기도 하는데, 괴물화 사태를 겪으면서 하나가 되고 어떻게든 연대해서 생존하는 과정을 겪으며 다른 감정들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 녹아나지 못하는 괴물보다 괴물 같은 인물들이 만들어졌고, 미스터리한 여전사 서이경(이시영) 캐릭터도 새로 만들어졌다. 크게 사회적 메타포나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