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여름, 바다에서 혼자 배를 타던 알렉스(펠릭스 르페브르)가 전복사고를 당한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다비드(벤자민 부아쟁)가 그를 구하는데, 이후 다비드의 어머니인 고르망 부인(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의 가게에서 알렉스가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하지만 시작부의 내레이션 목소리가 알리듯 영화 <썸머 85>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죽음이 취미라니,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알렉스의 목소리는 둘 사이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할 기세다. 그렇게 죽음과 사랑, 어머니와 아들간의 관계, 사회적 성장과 성적 발달에 대한 미스터리한 회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뜻 <썸머 85>는 청소년기의 첫사랑을 다루는 사실적인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슈퍼 16mm 필름으로 촬영한 화면의 질감은 현실적이고, 다소 평범한 시대극 분위기까지 풍긴다. 그렇지만 대다수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들처럼 이번에도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다. 잠재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판타지적 스릴러가 리얼리즘 드라마와 혼합된다.
원작은 에이든 체임버스의 소설로, 1985년 당시 17살이었던 오종이 깊이 빠져들었고, 훗날 이 책을 직접 느슨하게 각색했다. 오종은 이 소설에 담긴 여러 모티브가 자신이 지금껏 다룬 영화 속 소재들과 겹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동성애를 비롯해 여성 복장, 문학 선생, 영안실, 묘지 등 오종 영화의 단골 소재들이 <썸머 85>에 고루 분포해 있다. 게다가 대학 시절 은사였던 에릭 로메르 감독의 ‘여름 시리즈’의 분위기도 표방한다. 작은 소품 같은 영화지만, 자전적 분위기가 주는 감성은 웅장하다. 2020년 칸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며, 오종의 19번째 장편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