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산다는 감각을 가장 생생히 느끼게 하는 곳을 꼽아보라면 용산 아닐까. 남산을 끼고 둘러선 이 지역은 동네의 줄기인 산의 모양이 용과 같다 하여 이름도 용산(龍山)이 되었다. 흔히 서울의 얼굴 하면 종로를 떠올리지만, 궁과 광장으로 대표되는 그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도시인의 일상이 이곳 용산에는 남산의 능선을 따라 촘촘히 박혀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역 뒤 ‘푸른 언덕 마을’ 청파동은 서울살이의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식민지 시대의 적산 가옥과 낡은 한옥 그리고 다세대주택이 좁다란 골목을 따라 공존하는 동네. 용산의 많은 곳이 유흥가로 개발된 것과 달리 청파동은 서민의 주거지로 여전한 모습을 갖고 있다.
《청파소나타》는 청파동에 사는 뮤지션 정밀아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서울에서의 삶을 노래로 빚어낸 음반이다. 세밀한 관찰과 관조하는 시선을 오가며 담아낸 서울의 모습은 소리만으로도 상당히 회화적이다. 청파동의 거리 소음으로 시작하는 첫 트랙을 따라 자연스럽게 도시의 분주한 새벽 풍경을 떠올리다보면 어느새 가까이서 속삭이듯 꾸밈없는 목소리가 조용히 스며든다. 이는 춥고 캄캄한 밤,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볼 때 느끼는 감각과도 비슷하다. 발아래의 모습은 무척 바쁜데 나는 더없는 고요에 빠지게 되는, 거리의 소음보다 내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그 느낌.
세세히 묘사한 동네의 모습만큼이나 귀를 잡아끄는 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대화체로 표현한 가사다. “근데 엄마 혹시 그날이 생각나세요? 내가 혼자 대학 시험 보러 온 날 옛날 사람 봇짐 메고 한양 가듯이 나도 그런 모양이었잖아요.”(<서울역에서 출발>) “언니, 아직 안 자나요. 나 잠이 안 오네요. 나랑 얘기 좀 할래요. 그냥 얘기 좀 들어줘요.”(<언니>) 정밀아는 삭막한 도시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비슷한 마음으로 연결돼 있다고, 그러니 조금은 덜 외로워해도 된다고 노래로 토닥인다.
PLAYLIST+ +
오지은 <서울살이는>
타향으로서의 서울살이에 대해 노래한 곡. 거리와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 ‘서울사람들’과 새로 맺어야 하는 관계의 어려움 등을 세심하게 표현한 가사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이 곡을 만든 오지은이 서울 토박이라는 사실에 외려 배신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있을 정도.
조규찬 <서울하늘>
“오늘은 서울하늘이 외로워”로 시작하는, 서울의 야경과 잘 어울리는 노래. 조규찬 4집에 수록된 명곡으로 정준일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포근한 현악 사운드의 외피를 입어 언뜻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떠나간 연인을 회상하며 읊조리는 가사는 쓸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