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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현상' 고두현 감독 - 누구나 인생에 요요같은 것 하나쯤은 있지
2021-01-08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아직도 요요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큐멘터리영화 <요요현상>은 한국에서 요요 잘하기로 손꼽히던 현웅, 동건, 종기, 대열, 동훈을 7년간 좇은 작품이다. 요요는 PC통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인기를 누리던 20세기 스포츠로,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다섯명의 주인공은 2010년대가 되자 사회로 나갈 나이가 된다. 마지막으로 멋진 공연을 한 뒤 요요 인생을 마무리 지으려는 이들은 준비한 것보다 더 성공적으로 공연을 해낸다.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더 큰 미련이 남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큐멘터리스트 고두현 감독은 그 이후의 시간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요요현상>은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제작지원작 <옥상 위에 버마>(2016)를 공동연출한 고두현 감독이 내놓은 두 번째 장편다큐멘터리다. <요요현상>을 가지고 서울독립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통해 영화제 관객을 만났고, 이제는 일반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친 고두현 감독을 만났다.

-공연예술팀 ‘요요현상’을 처음 카메라에 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1년 교환학생 자격으로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었는데, 다큐멘터리의 등장인물이자 대학 동기인 곽동건이 요요 공연을 위해 유럽에 온다고 했다. 취미로 요요를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동건이가 어릴 때부터 요요로 거리공연을 함께했던 형들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항상 가고 싶던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참가한다고 하더라. 더이상 요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동건이가 에든버러 공연 장면을 찍어줄 수 있느냐고 했고, 나 역시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요요현상’을 처음 만났는데, 이들이 공연을 너무 멋있게 하는 거다. 너무 열심히 준비해서 왔고, 이렇게 요요를 잘하는데 정말 그만둘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마침 ‘요요현상’ 팀원들의 고민이 내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다큐멘터리로 먹고살 수 있을까’,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난 뭘 좋아하지’ 하는 고민이 많았던 때다.

-그렇게 시작한 촬영이 7년간 지속됐다. 촬영을 이어가면서 마지막 장면이라고 느껴지는 국면이 있었나.

=필모그래피상으로는 두 번째 장편인데, 시작한 시기로는 <요요현상>이 첫 번째 장편다큐멘터리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고 경험이 없어서 끝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들이 요요를 어떻게 자기 삶으로 가져갈지 궁금했는데, 그 결론이 나기까지 평균 다큐멘터리 제작 기간인 2~3년으로는 부족했다. 대신 2013년에 단편으로 작은 매듭을 지었고, ‘앞으로 어떻게 할까 고민이다’로 끝났다. 장편으로 더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즈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이제 영화를 끝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요요를 업으로 삼은 현웅과 대열이 서로 갈등하고, 이전에 공연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어두웠던 동훈이 형은 계속 대회에 출전하며 요요를 자기 삶에서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요요로 먹고살기로 한 현웅과 대웅이 한 연습실에서 각자 다른 연습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현웅은 요요만 연습하는 반면, 대열은 요요만으로는 공연이 풍성해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풍선 아트에 관심을 두고 풍선을 만지작거린다.

=편집 도중 내가 찍은 것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길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한 사람은 요요를 열심히 하고 있고, 한 사람은 풍선과 마임을 하고 있었다. 특별히 갈등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이런 장면을 연출해달라고 요구한 적 없는데 포착된 순간이다.

-레퍼런스로 삼은 작품이 있다면.

=워낙 오래 찍은 작품이니까 레퍼런스라고 생각한 작품은 없는데, 제임스 마시 감독의 <맨 온 와이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2010년에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봤는데, 그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영화라는 장르가 무척 흥미진진하구나, 이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구나 싶었다. <맨 온 와이어>는 주인공 광대가 줄타기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건 물론 인터뷰조차 흥미진진하게 구성한 작품이다. 광대와 그를 돕는 이가 어떻게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잠입했는지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나갔다. 더구나 사건 이후 외줄을 탔던 광대와 오르게 도와주던 사람들의 위치가 달라지는 게 재밌었다. 광대는 스타가 됐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입장이 됐다. 나는 결말부의 갈등이 흥미로웠다. <요요현상>도 에든버러에서 공연을 하기로 마음먹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을 수 있지만, 나는 인물들이 공연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의 행보가 달라지는 데 관심을 두게 됐다.

-등장인물 다섯 사람에게 요요는 어떤 의미인가.

=자존감인 것 같다. 요요는 그들이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하고, 어떤 순간 몰입해서 열심히 했던 무언가다. 어떤 사람에게 요요는 지금 자신을 표현하기 부족한 오브제로 느껴지고, 여전히 요요만이 중요한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일터에서 겪는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다. 요요는 좋은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요요 같은 것을 하나씩 갖고 있다. 서울독립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요요를 떠올리면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다섯 중 한명에 이입해서 보더라.

-다큐멘터리는 자신을 성찰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오랜 작업 끝에 답을 찾은 게 있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살고 싶은데 어떤 이야기들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리고 내 관심사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선택에 관심이 있다고 느낀다. 영화에는 서사가 있고, 그 서사는 등장인물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 사람들의 선택은 픽션 속 인물의 선택보다 훨씬 무겁다. 선택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나한테 다큐멘터리의 이런 점이 픽션보다 더 흥미롭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더 들여다보고 싶다.

-다큐멘터리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중앙대학교 재학 시절 <요요현상>을 찍으면서 주인공들의 삶이 궁금하고 더 관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주 중앙대에서 ‘다큐나이트’라는 이름으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열었다. 한명만 보러 온 날도 있었지만 50~60회정도 상영했다. 그러다가 다큐멘터리를 공부하고 싶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다큐멘터리 전공 전문사에 진학했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안경, 안경들>. 사람의 삶을 바꾸는 안경에 대한 이야기다. 1989년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이 거문도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벌어졌다. 망자의 친구들이 죽음의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하는데, 나는 2014년 이내창씨의 묘 이장 당시, 영상 기록을 맡았다. 시체는 다 썩고 안경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친구들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안으로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의문사를 다룬 PD 다큐멘터리는 많지만 사건이 남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그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한다. 2020년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기획개발지원을 받았고, 곧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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