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은, 정이용 작가는 함께 만화를 창작한다. 두 작가는 2013년 <환절기>를 시작으로 장편 <당신의 부탁>(2015), <니나 내나>(2016), <요요>(2019), 그리고 단편 <캠프>(<토요일의 세계>에 수록)를 작업했고 이동은 작가는 감독으로 명필름 영화학교에서 <환절기>(2018)를 영화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영화 <당신의 부탁>(2018), 영화 <니나 내나>(2019)를 찍었다.
이동은 작가의 영화용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인용 작가의 만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만화를 바탕으로 이동은 작가는 감독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다. 현실적인 인물들이 범상한 사연을 보여주는 이동은·정이용 작가의 만화는 언제나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작품마다의 개성은 분명하다. 글·그림 작업이 선명히 나뉜다기보다는 상대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세계에 받아들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방법론이, 여러 인물이 한 프레임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만화 속 컷들과 닮아 있었다. <씨네21>에 ‘디스토피아로부터’ 칼럼을 연재해온 이동은 작가의 마지막 연재를 앞두고 만화를 위해 시나리오를 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진,진> 출간을 기념해 두 작가에게 만남을 청했다.
-두 사람이 함께 인터뷰한 기사가 없더라.
이동은 딱 한번 있었다. 영화 개봉할 때 관객과의 대화(GV)도 한 적이 없다. 정이용 작가가 영화를 보는 것도 어려워한다. 공감성 수치가 높다고 해야 할까.
정이용 GV를 보는 것도 못한다. 아예 모르는 감독이 만든 영화면 몰라도 함께 만화 작업을 한 작품을 이동은 감독이 연출하는 경우는 너무 밀착한 느낌이 들어 어렵다. 내가 만든 장면이 그대로 반영된 걸 보는 게 힘들다.
-<환절기> 이후에 최근의 <진, 진>까지 5권의 장편과 단편 <캠프>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두 사람이 작업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방식은 어떻게 되는지.
정이용 완성된 시나리오를 한번에 받는다. 원고에 대해 내가 피드백을 하고, 그렇게 수정해서 완성한 원고로 콘티 작업을 같이한다. 캐릭터 디자인도 같이한다. 그렇게 다 꾸려지면 매일 원고를 이메일로 보내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동은 <환절기> 처음 시작이랑 맞물려 있는데, 애초에 영화 시나리오가 작업의 시작이었다. <당신의 부탁>도 <니나 내나>까지 하고 나서는 아예 만화를 목표로 해서 장르색이 강한 만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었다. <뇌홍>이라고.
정이용 그런데 내가 못하겠다고 했다. (웃음)
이동은 만화는 만화만의 특징이 있으니까 거기에 적합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싫어하고 영화를 위해 쓴 작품을 만화화하는 편을 좋아하더라. <요요>도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었다. 정이용 작가의 작업 스타일도 영화적인 면이 강하다.
-오랜 협업을 이어오는 두 사람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나랑 비슷하구나’ 생각할 때도 있고 반대도 있을 텐데.
정이용 시나리오를 받아 작업하면서 디테일을 고치는 일이 꽤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때 납득이 되어야 그릴 수 있어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이의를 제기하고 이동은 작가에게 설정을 바꾸자고 할 때도 있다. 편집적인 것을 바꿀 때는 이동은 작가에게 이야기한다.
이동은 정이용 작가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주로 의견을 주는 부분은 어떤 인물의 감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불친절하다는 식이다. 그런 질문은 영화 작업을 할 때 키스탭이나 배우들이 하는 질문과 비슷하니까 시나리오를 보완하거나 보완하기 싫으면 싸우거나 한다. 정이용 작가의 그림 해석에 생각이 다를 때도 있다. <환절기>에서 용준과 수현 외모가 비슷하게 그려졌다. 영화는 단역이 잠깐만 나와도 구분이 되는데, 만화는 인물마다 그림체로 구분이 확실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낸다.
정이용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일단 내가 먼저 고쳐 그려서 보낸 후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를 타진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체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면서 바꾸는 부분을 이동은 작가가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으니까 계속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동은 영화를 찍을 때도 나는 역제안을 많이 받고 싶다. 내가 큰 틀에서 얘기를 정해놓은 뒤 부문별 전문 스탭들이 의견을 주는 게 좋다.
-이동은 작가에게 만화는 정이용 작가 한명만 설득하면 되는데 영화는 제작자부터 스탭, 배우까지 수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동은 <환절기> 때 그 차이를 가장 많이 느꼈다. <환절기>는 명필름랩 수료 작품이었는데 제작 전 준비단계가 길었다. 시나리오에 대해 의견을 들을 일이 많았다. 정이용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만화는 가내수공업처럼 둘이 해답을 찾으면 되니까 수월한 면이 있다. 내 머릿속의 <환절기>, 만화 <환절기>, 영화 <환절기>의 세 버전이 있는 셈이다. 스탭들에게도 저마다의 <환절기>가 있었을 것이다.
-정이용 작가는 영화 3편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
정이용 종합적으로는 <당신의 부탁>. 감정 면에서 더 다가왔던 작품. <환절기>는 개봉 버전과 영화제 버전이 다르다. 영화제 버전을 좋게 봤다. 개봉 버전은 아쉽고.
이동은 개봉 버전이 15분 정도 삭제되었다.
-이동은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공통점이 만화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연기 잘하는 경력 많은 여자 배우가 있고, 아들이거나 유사 아들인 젊은 남자배우가 호흡을 맞추고, 그 둘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앙상블이 극을 이끌어간다. 갈등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새로운 인물과의 관계를 만든다.
정이용 그런 부분은 내 화두이기도 하다. 다른 결의 작품(<뇌홍>)을 밀어낸 이유도 거기 있는 듯하다. 내가 가족 때문에 겪는 부침이 만화와 영화에서 해소되는 경험을 하게 되어 좋다.
이동은 쓰다가 접은 <뇌홍> 시나리오는 장르물이었다. 유괴가 나오는 미스터리 멜로. 영화로는 제작비가 많이 들지만 만화로 표현하기는 좋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다. 대중적으로도 반응이 좋을 것 같았다. 바로 간파당했지만. (웃음)
정이용 공포나 스릴러물 보는 건 좋아하지만 내가 하기에는 맞는 것 같지 않다. 장르물에서는 인물들이 극단에 있다. 내가 그런 극단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면서 가짜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동은 작가 작품에는 여성이 항상 중요하게 나오는데, 장르물이라 해도 이동은 작가식으로 풀어내면 작업할 수 있을 듯하다.
-이동은 작가가 누구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를 쓸까 결정하는 단계가 궁금하다. 늘 두명 이상의 인물이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나.
이동은 <진, 진>은 세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다가 한명이 빠졌다. 에피소드를 본 정이용 작가가 한명의 에피소드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니나 내나>는 네명이고. 처음부터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편집본 시사를 할 때 늘 그 부분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한명을 따라가는 편이 이야기에 몰입하기 좋으니까. 그런데 나는 좋아하는 영화도 여러 인물이 이야기를 펼쳐놓고 시작해서 서서히 한곳으로 모이는 식이 좋다. 마이크 리 감독이나 알렉산더 페인 감독 영화처럼. <당신의 부탁> 때는 효진을 먼저 떠올렸고, <환절기> 때는 미경을 먼저 떠올리기는 했다. 여성을 먼저 떠올리는 건 분명하다. 남성이 중심인 이야기를 시도한 적도 있는데 잘 안 풀렸다.
-<요요>는 다른 작품들과 약간 다른 인상이다. 컷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아서 웹툰을 출판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올 컬러이기도 하다. 내용 면에서도 로맨틱 코미디와 SF 타임슬립물이고.
정이용 당시 다음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써놓은 <요요>가 있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걸 먼저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먼저 말했다. 컬러로 했으면 좋겠다든가 칸 만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건 이동은 작가가 계획했다. 아트 디렉션은 이동은 작가가 결정한다.
이동은 2015년 명필름 영화학교를 다니면서 <환절기>를 준비하다가 쉬엄쉬엄 재미있게 쓴 작품이 <요요>다. <비포 선라이즈>나 <사랑의 블랙홀>을 오마주한다는 생각이었다.
-먹는 장면이 많다. 한국 창작물에서 드라마적 긴장이 강해지는 장소 중 하나가 식탁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돌봄이라는 행위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뭘 먹이고 먹을 때다. 먹는 장면이 어떤 대목에서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이동은 작가에게 먼저 묻고 싶고, 정이용 작가가 그리면서 먹는 장면의 어떤 요소에 집중하는지 알고 싶다.
이동은 먹는다는 행위는 가장 일상적인 행동이다. 마블 영화나 히어로 영화에 먹는 장면이 거의 없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산다는 건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는 일 아닐까. 그게 행복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편이라 그 생각이 반영된 듯하다.
-정이용 작가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정이용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드라마 장르일 때가 경우가 많은데 즐기기는 호러, 스릴러다. 드라마가 훨씬 집중을 요해서 좋아하지만 평소에 보기 어렵다. 장르물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고, 집중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장르가 어렵다. 극적인 사건 없이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동은, 정이용 작가의 만화에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있는 대화 신이 무척 좋다.
정이용 대화 장면이 좋더라. 대화에서 컷을 나누고 리듬을 만드는 방식이. 반면 액션을 연출하라고 하면 아무 생각이 안 든다. 내가 내 한계를 미리 설정하고 있어서 장르물 그리기를 더 어렵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이동은 실제 겪은 것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선 쓰기 어렵다. 드라마보다는 끝까지 가는 영화를 만들어야 독립영화 진영에서 인정받기가 더 나은 것 같다. 현장에서도 끝까지 가는 편이 더 쉽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감정을 절제하고 덜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정이용 언젠가 이동은 작가가 코미디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친한 사람들 앞에서만 보이는 모습을 잘 녹여내서.
<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펴냄
진아와 수진 두 사람의 이야기. 20대 진아는 고시원에 살면서 밤낮없이 일을 해 생계를 해결한다. 고등학생인 동생 현아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1년 전 무연사로 사망한 아버지의 사망신고가 되지 않은 데다 그로 인해 동생이 대학 장학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다.
남편과 사별한 40대 수진은 만나던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다. 임신을 알리니 애인이라고 생각한 남자는 불쾌할 정도로 몸을 사리고, 장성한 아들은 결혼을 한다고 나선다. 벽을 보고 사는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문을 발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그 문이 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다음날을 맞이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