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존재의 이유
2021-01-15
글 : 장영엽 (편집장)

지난 1월 13일,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영화제 형식의 페스티벌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집행위원회는 “코로나19 유행과 극장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한국영화계의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앞으로 단편영화는, 또 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긴 고민의 시간”을 가진 끝에 영화제 운영 종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진감독들의 다채로운 장르적 감각을 발굴하고 나홍진, 조성희, 엄태화, 장재현 감독 등 200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감독들의 등용문이 되어줬다는 점에서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운영 종료 소식은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으로 지난해 말부터 연이어 들려오는 각종 영화 사업과 영화제 운영 중단 소식이 일련의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와 KT&G상상마당 영화사업팀, 인디다큐페스티발과 미쟝센단편영화제.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하던 존재들의 사라짐은 극심한 불황 속에서 영화의 미래에 대한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때로는 위기가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지만, 기성 창작자들마저 광활한 뉴미디어 플랫폼에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시대, 영화산업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신진 창작자들은 여러모로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환경에 놓이게 됐다. 이는 1월 12일 선출된 김영진 신임 영진위원장, 최재원 신임 부위원장 체제의 영화진흥위원회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질문은 팬데믹 시대의 인류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와도 같은 물음일 것이다. 이는 ‘태어나기 전 세상’을 배경으로 태어나야 할 이유가 너무도 분명한 비운의 재즈 뮤지션 지망생과 도무지 태어나야 할 이유를 모르겠는 아기 영혼의 동행기를 다룬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한편 관객 각자의 내밀한 경험과 추억을 자극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미덕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한 듯하다.

특히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긍정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존재의 역할과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현 시대의 관객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안겨줄 거라 생각된다. 한편 <소울>은 코로나19로 인해 디즈니·픽사의 첫 재택근무작으로 완성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가운데 완성된 이 작품은,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모두가 같은 꿈을 꿀 수 있음을 입증하는 하나의 경이로운 사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호 특집은 예술적인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매번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하는 디즈니·픽사의 현재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다.

P.S. 이번호부터 ‘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연재를 시작한다. 뮤지션 오지은씨는 음악과 영화, 일상에 대한 진솔한 단상을, SF 작가 이경희씨는 최근 뜨겁게 주목받는 장르인 SF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더불어 이번호를 끝으로 ‘디스토피아로부터’ 연재를 마무리하는 이동은 감독과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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