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파힘' 프랑스 주니어 체스 챔피언이 된 방글라데시 소년의 실화를 다룬 작품
2021-01-19
글 : 김철홍 (평론가)

“프랑스에 체스 그랜드 마스터를 만나러 가지 않을래?” 체스 신동인 파힘(아사드 아메드)은 아빠로부터 달콤한 제안을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데, 실은 파힘의 출국이 여행이 아니라 망명이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반정부 활동 가담으로 위험에 처한 아빠가 내린 결단이었던 것. 어린 파힘은 엄마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를 거부해보지만, 아빠는 그런 파힘을 끌고가다시피 하며 프랑스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프랑스에서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구체적인 계획 하나 없이 언어도 통하지 않는 파리에 도착한 부자를 받아주는 곳은 난민 보호소뿐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정식 체류증을 발급받지 못하면 다시 본국으로 추방될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빠는 희망을 잃지 않고 파힘을 체스 클럽에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힘은 자신의 운명을 뒤바꿀 스승 실뱅(제라르 드파르디외)을 만난다. 실뱅은 파힘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본다. 유능하지만 커리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그는 재능을 보이는 파힘을 엄격하게 대하지만, 체스에 앞서 외국 생활 자체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파힘은 발전이 더디다. 설상가상으로 첫 번째 지역대회에서 아쉽게 우승하지 못한 날, 체류증 발급을 거절당한 아빠에게 추방 통보가 떨어진다. 이제 난민 보호소도 파힘을 보호해주지 못하게 된 것이다.

<파힘>은 프랑스 주니어 체스 챔피언인 파힘 모함마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2000년 출생인 파힘 모함마드는 2008년 프랑스로 이주해 4년 동안 갖은 고초를 겪은 뒤, 2012년 12살 미만 부문 프랑스 챔피언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세계 주니어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TV를 보다 우연히 방글라데시 출신 소년 챔피언의 이야기를 접한 피에르 프랑수아즈 마틴 라발 감독은 즉시 이 사연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 소년의 성공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난민 문제에 대한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는 점이 감독의 마음을 울린 것 같다.

영화는 극의 주요 소재인 ‘체스’만큼이나 파힘 가족의 프랑스 문화적응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손으로 식사를 하던 파힘이 식당에서 어색하게 칼질을 하는 모습과 “방글라데시에선 1시간은 늦은 것도 아니지”라고 말하며 ‘방글라데시 타임’을 말하던 그들이 점점 시간을 맞춰가며 적응해가는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마냥 안도할 수는 없는 건 그들이 언제라도 이 나라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된다면 적응하려 했던 모든 순간들이 무의미 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힘의 가족은 입국한 지 13년이 된 2021년 현재에도 체류증만 획득한 상태이고, 프랑스 시민권은 아직 취득하지 못했다.

한편 영화는 메인 서사와 크게 관련 없는 일상적인 순간들을 여럿 배치해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곤 한다. 말하자면 ‘체스 영화’라기보다는, ‘체스 선수’를 다룬 영화다. 따라서 체스 게임의 룰에 익숙하지 않아도 관람에 무리는 없지만, 반대로 체스판 위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파힘>은 차라리 그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고 봤을 때 오히려 다른 감정들을 얻을 수 있는 영화다. 유명 관광 명소 앞에서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을 본 적 있다면, 이 영화에서 파힘의 아빠가 에펠탑 앞에서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며 색다른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빠 누라 역을 맡은 미자누르 라하만과 파힘을 연기한 아사드 아메드는 둘 다 연기 경력이 전무했지만, 그 모습이 되레 이방인의 처지와 어우러져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프랑스의 국민배우이자 칸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그에 못지않게 베테랑 배우인 이자벨 낭티가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힘을 보탰다.

CHECK POINT

피데 마스터(FIDE MASTER)

파힘은 2017년 국제체스연맹(FIDE)이 인정한 피데 마스터가 되었다. 피데 마스터는 그랜드 마스터와 인터내셔널 마스터 다음으로 높은 타이틀이며, 한번 획득하면 그 유효기간은 평생이다.

실존 인물과 배우의 공통점

파힘을 연기한 아사드 아메드 역시 파힘과 같은 방글라데시 출신이며, 정치가인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해온 난민이다. 입국한 지 3개월 만에 영화를 찍게 된 그는 촬영 소감으로 난민의 어려운 삶에 대한 이해를 부탁했다.

피에르 프랑수아즈 마틴 라발

피에르 프랑수아즈 마틴 라발 감독은 배우 출신 연출자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프랑스 체스연맹 회장 역을 맡아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날 시험해봐>(2006)가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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