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을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죠. 달려야만 했고, 불안했고…”, “내 페이스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냅다 달렸어요. 전력 질주.” 달리기 얘기인가 했는데 일, 아니 삶에 관한 고백이었다. 4부작으로 방송된 Mnet <달리는 사이>는 데뷔 4년차부터 14년차까지 20대 여성 가수 다섯명이 여행하며 러닝 코스를 함께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달릴 때 숨차면 오히려 속도를 낮춰. 그래도 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니), “저는 늘 앞일을 걱정해서 하루를 망쳐왔어요. 그런데 오늘 달린 산길은 커브가 많으니까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거예요. 다음 길에 가서야 알 수 있더라고요. 가서 보면 되니까 아무 생각하지 말자” (유아) 등 이들이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펼쳐진다.
‘달리기’와 ‘일하기’의 의미가 겹치고, 비슷한 생활 속에서 비슷한 압박감을 느껴온 동료와 가까워진 출연자들은 점점 깊게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낸다. “무대를 할수록, 방송에 나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츄, “멈추면 이 경기에서 퇴장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는 청하의 고백은 절박하다. 시간의 흐름이 경력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상품 가치를 잃는 거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K팝 시장에서 자기혐오와 자기착취는 마음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활동해온 선미는 자신이 경계선 인격 장애 치료를 받아왔다고 털어놓으며 자아가 만들어지는 청소년기에 차 안에서, 스케줄을 소화하며 보낸 ‘우리’가 겪는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다 간과하기 쉬운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다짐하듯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내자.” 청년 여성의 우울과 자살이 밀접한 연관성을 띠고 증가하는 사회에서 선미의 말은 이들 다섯명만을 위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20대 여성들이 자신의 일과 삶에 관해 진지하게 말하고 서로 손잡는 자리는 더욱 늘어나야 한다. <달리는 사이>는 멋지게 테이프를 끊었다.
VIEWPOINT
한번 달려볼까요?
작심삼일도 지나고 새해에는 새사람이 되겠다던 다짐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며 일주일에 한두번 간신히 나가던 실내 체육 시설도 영업을 중단한 지 한참인 요즘, <달리는 사이>를 보다 보면 놀랍게도 밖에 나가 달리고 싶어진다. “우울할 때 소파에서 좀비처럼 웅크리고 있었는데, (달리면서) 심장이 뛰니까 ‘나 여기 있구나. 실체가 있는 사람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라는 유아의 벅찬 표정에 덩달아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다. 마침 집 근처에 좋은 달리기 코스도 있고 러닝화도 있는데, 이번주는 너무 추우니까 다음주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