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한 도시국가 또는 자치국가가 있다. 매년 수많은 성직자와 관광객이 다녀가는 바티칸시국. 이탈리아 영토 안에는 바티칸시국 말고도 도시국가 형태의 나라가 있는데 바로 산마리노 공화국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있었고 도시국가 개념에 대해 이탈리아인들은 대체로 익숙한 편이다. 로마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국가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의 나라를 갖고 싶다는 꿈을 꿔볼 만도 하다.
1960년대 어느 한여름, 볼로냐대학 엔지니어과를 졸업한 조르조 로사는 어느 영토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토를 갖고 싶다는 꿈을 꾼다. 120평 정도의 땅,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영토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보고 싶었다. 그는 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리미니에서 배를 타고 12km 떨어진 곳에 자신의 섬을 짓는다. 로사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세간에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조르조 로사의 이야기는 전 로마 시장 발터 벨트로니에 의해 <섬과 장미>라는 책으로 출간된다. 조르조 로사가 남긴 자료는 달랑 사진 몇장과 한 움큼도 되지 않는 서류 뭉치뿐이었다.
2017년 조르조 로사의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은 영화감독 시드니 시빌리아를 만나면서 <장미의 섬>(L’incredibile storiadell’Isola delle Rose)이라는 영화로 제작된다. <장미의 섬>은 엔지니어였던 조르조 로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지난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는데, 이탈리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먼지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이야기가 영화로 되살아났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시드니 시빌리아는 감독이자 각본가 그리고 제작자로 알려져 있다. 2014년에 그론란디아 제작사를 차린 뒤 첫 장편 <내가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거야>(Smetto quando voglio)로 같은 해 이탈리아 비평가들이 최고 영화에 주는 글로보상을 수상했다. 시드니 시빌리아 감독은 이 영화로 유럽풍의 코미디 면모를 과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장미의 섬>에 대해서는 가장 이탈리아적인 코미디영화이면서도 현재의 이탈리아 코미디와 조금 거리가 있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