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두명과 미술가 한명이 모였다. ‘소리와 그림이 서로 영향을 받아 태동한다면 어떤 꼴을 갖추게 될까.’ 점, 선, 면, 꼴, 각, 축, 상이라는 조형의 기본 요소들을 주제로 하되 이 단어들의 조형적 면모가 희석되어 사용되는 일상어 〈맞선〉 〈맹점〉 〈울상〉 〈황당한 면〉 〈못 볼 꼴〉 〈빈축〉 〈안 될 각>을 제목으로 삼고 작업에 착수했다. 음악가 중 한명은 피아노로, 다른 한명은 드럼으로, 미술가는 판화로. 멀리 떨어진 서로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가까워지고 재탄생 할 수 있을지 실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대개 미술과 음악의 협업이 독자적 이미지에 영감을받아 음악을 만들거나 반대 방향으로 순차적인 진행을 해왔다면 이들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엉키기를 택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각자의 언어로 스케치한 뒤 단계마다 피드백을 거듭했고, 청각을 시각으로 시각을 청각으로 반영하며 작품의 몸집을 불렸다. 이런식으로 완성된 음반의 크레딧에는 ‘작곡/편곡 삼승’이라고 표기했다.
‘삼승’(三乘)은 작곡가 이민휘, 드러머 서경수, 판화가 최경주가 만든 팀 이름인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작업 방향과 의미를 상징하기도 한다. 단순히 더해가는 과정이 아닌, 상대의 도구로 나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곱하기의 작업. 이 독특한 태생의 결과물은 감상자에게도 이전에 없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장르적으로는 컨템포러리 재즈와 현대음악 어느 범주에도 쉽사리 끼워넣기 힘들지만 그 낯선 감각이 불편하기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에 가깝다. 박자의 단위가 자주 바뀌고 불협화가 강한 화성을 써도 수평적으로는 패턴화된 리듬을 엮어가는 순간이 여럿이라 어렵지 않게 들린다. 테크닉이 화려해 연주 자체를 듣는 즐거움도 크다. 이 모든 게 추상성이 강해도 그저 나를 맡겨놓고 감상해보길 권하는 이유다. 높아서 두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올라탔을 때 더욱 짜릿한 파도가 있지 않나. 삼승의 인스타그램 계정(@cubed_2020)에서 최경주의 판화 작업을 함께 본다면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PLAYLIST+ +
이민휘 《빌린 입》
이민휘는 한명의 뮤지션에게서 얼마나 다른 음악들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해왔다. 데뷔작 ‘무키무키만만수’의 《2012》와 최신작 ‘삼승’의 《상상도》 사이의 간극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2016년에 발표한 이 솔로앨범이야말로 깊고 스산한 정서를 간직한 독보적인 색깔의 음반이다.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했다.
만동(Mandong) 《먼저 출발해야지》
드러머 서경수가 기타리스트 함석영과 함께 만든 그룹 ‘만동’의 음반으로 총 8곡의 연주곡이 담겨있다. 보다 거칠고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함께 팀으로 활동했었던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와 베이시스트 정수민이 참여했으며, 앨범의 아트워크를 최경주가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