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라스트 레터'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등을 연출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2021-02-23
글 : 조현나

<러브레터> 개봉 이후 22년 만에 이와이 슌지 감독이 보내는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등을 연출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라스트 레터>는 편지를 통해 과거 자신의 첫사랑을, 그리고 그 첫사랑의 현재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나는 이와이 슌지만큼 로맨틱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는 찬사를 보낼 만큼 첫사랑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리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장기가 여실히 발휘된 작품이다.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 미사키의 장례식장을 묵묵히 지키는 동생 유리(마쓰 다카코). 그곳에서 유리는 미사키 앞으로 온 동창회 초대장을 전달받는다. 언니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참석한 동창회에서 유리는 미사키로 오해를 받는다. 그러던 중, 동창회에서 자신의 첫사랑인 쿄시로 선배(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재회한다. 이후 두 사람은 연락처를 주고받고, 유리를 미사키로 착각한 쿄시로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25년 동안 당신을 계속 사랑했다면 믿어줄래요?”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남편의 오해로 유리는 쿄시로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없게 되고, 대신 쿄시로에게 한통의 편지를 부친다. 유리는 미사키인 척 편지를 이어가지만 이내 쿄시로도 그가 유리임을 알아챈다. 한편 쿄시로의 답장이 미사키의 딸 아유미(히로세 스즈)에게 전달되면서 아유미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학창 시절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2018년 중국에서 동명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서사의 큰 흐름은 유사하지만 두 영화는 계절의 차이를 두고 상반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중국 버전의 <라스트 레터>가 겨울을 배경으로 차분한 공기를 유지한다면 일본 버전의 <라스트 레터>는 밝고 청량한 여름의 에너지가 주를 이룬다. 또한 일본 버전은 중국 버전보다 주인공들의 학창 시절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유리와 쿄시로가 생물학 동아리에서 만났고 강가에서 함께 동식물을 관찰하는 일지를 썼다는 등의 세심한 설정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처럼 일본 버전에서 더 정교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관계와 감정선은 관객의 몰입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SNS 시대에 편지를 쓰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영화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의 말대로 <라스트 레터>는 편지의 위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 영화에서 편지는 굉장히 다양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먼저 유리가 쿄시로에게, 쿄시로가 미사키에게 전하는 편지에는 첫사랑의 떨림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편지들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에서, 유리가 언니 미사키의 과거를, 딸 아유미가 엄마의 청춘을 확인할 수 있는 메신저로 그 역할이 점점 확장된다. 요컨대 편지는 단순히 마음을 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떠난 미사키의 삶을 기억하고, 이어나갈 시작점이 되어주는 것이다. 영화는 자신의 삶과 마음을 글로 기록하고, 물성을 지닌 존재로 남긴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캐스팅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4월 이야기>로 이와이 슌지 감독과 합을 맞췄던 마쓰 다카코가 유리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쿄시로를 연기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국내에 잘 알려진 히로세 스즈가 학창 시절의 미사키와 미사키를 똑닮은 딸 아유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너의 이름은.>에서 목소리 연기로 활약한 가미키 류노스케가 10대 시절의 쿄시로를, 1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모리 나나가 아유미의 사촌 소요카를 연기한다. 그 밖에도 <러브레터>의 주역이었던 나카야마 미호와 도요카와 에쓰시가 짧게나마 반가운 얼굴을 비친다.

CHECK POINT

청량한 음악, 여름의 소리

고바야시 다케시 감독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이어 <라스트 레터>의 음악 작업을 맡았다. 청량하고 때론 서정적인 음악들이 영화의 몰입을 돕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모든 효과음을 만들 정도로 소리에 공을 들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매미 소리다. 그는 매미의 종류, 밤과 낮의 소리를 모두 세심하게 구분해 여름 신의 배경에 배치했다.

베테랑 프로듀서의 활약

가우무라 겐키 프로듀서는 <고백> <분노> <너의 이름은.> 등에 참여한 실력파 프로듀서다. 또 이와이 슌지 감독과 10년 넘게 친밀한 관계를 이어온 동료다. 그는 “일본 영화계에 이와이 슌지 감독이 미치는 영향은 정말 크다”고 팬심을 드러내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베스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라스트 레터>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감독의 고향을 배경으로

<라스트 레터>의 촬영은 대부분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향인 센다이에서 진행됐다. 그가 자신의 고향을 로케이션 장소로 삼은 건 처음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센다이의 구석구석을 살필 정도로 로케이션 헌팅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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