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을 아는가? 국가무형문화재 1호다. 조선 시대 선조의 공을 기리기 위해 행하던 제사, 즉 종묘제례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인데 작사, 작곡은 세종 대왕이 맡았다. 그전까지는 중국의 아악이 연주되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 대왕이 친히 가사를 짓고 노래도 만들었으니 도대체 세종 대왕은 못하는 게 뭔가 싶다. 종묘제례악은 이렇게 15세기에 지어져 최근까지도 매년 서울의 종묘에서 제사와 함께 악가무의 형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공연 레퍼토리인 셈이다. 유교와 제례라는 권위로 점철되어 감히 건드릴 수 없던 이 음악이 얼터너티브 일렉트로닉 듀오인 해파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로 재탄생되었다.
종묘제례악은 크게 왕조의 군사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부분과 학문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해파리의 음반에는 이중에서도 군사적인 업적을 찬양하는 ‘정대업’ 악곡 시리즈의 제일 첫 노래들인 소무와 독경이 한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에 여기 노래하고 다시 춤을 추나이다’라는 가사로 우아한 멜로디가 시작되면 곧이어 비장한 전자 비트가 이어지고 본격적으로 1절이 시작되는데 가사가 독특하다. ‘천권아열성계세소성무/ 서양무경렬 시용가차무’. 박력이 넘치지만 무슨 말인지는 잘 알 수 없는 세종 작사의 노랫말은 테크노와 앰비언트 위에서 멋으로 출렁인다. 이어 영어로도 ‘Therefore, we sing and dance again’이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데 재미있는 건 ‘성군들의 성스러운 무공을 찬양하기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춘다’라는 내용의 가사에서 해파리가 청자에게 작정하고 전달하고 싶은 부분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대목이라는 점이다.
노래와 춤보다는 공적을 기리는 것이 본질에 가까웠던 종묘제례악의 특성에서 이성적 본질을 제거하고 유희성만 짚어 20세기 댄스뮤직의 요소와 결합하며 ‘소무’와 ‘독경’을 대중음악으로 바꿨다. 해파리의 《소무독경》은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 공연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데, 전자악기가 빼곡한 가운데 실제 종묘제례에서 추는 무용인 일무(佾舞)가 공연의 압권이다. 바야흐로 전통음악을 통한 탈전통의 시대에 새로운 결합을 제시한 해파리의 《소무-독경》. 멋이란 이런 거다.
PLAYLIST+ +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해파리의 《소무-독경》이 뭐가 그렇게 특별하냐고? 종묘제례악의 원곡은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녹음한 것이 유일한데, 이 음반을 들으면 해파리의 재해석이 악보와 실제 연주에 기반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노래를 하고 춤은 추지만 정서가 완전히 배제되고 형식만 남긴 음악, 그것이 유교의 음악이다.
Agust D <대취타>
한국의 전통음악을 현대의 어법으로 바꾸는 시도를 할 때 지금까지는 정서와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는 민속음악 계열(민요, 판소리, 산조 등)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그 시도가 궁중음악에까지도 미치고 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게 방탄소년단 멤버인 슈가의 솔로 프로젝트인 Agust D의 <대취타>다. 원곡의 기능을 컨셉으로 활용한 영리함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