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초간의 침묵)….” “아니, 이거 지금 라디오입니다~.”
SBS 라디오에서 일주일에 한번 <애프터 클럽>이라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7명의 디제이가 매일 새벽 1시에서 3시까지 맡아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데, 심야방송인 만큼 디제이들의 음악 취향이 많이 반영된 선곡이 특징이다. 처음 섭외되었을 때 제작진은 프로그램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송이다. 중간 멘트 없이 음악만 두 시간 틀 수도 있고 직접 만들어온 음원을 틀 수도 있고 아무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러니 덕원씨도 뭐든 마음대로 해보라”고 했지만…. 윤덕원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엄청 자유롭고 충격적인 방송이 되기보다는 진행자의 성향에맞는, 적당히 내성적이고 친근한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방송이다 보니 코너가 다양하거나 많지 않다. 사연에 맞는 노래를 선곡해주는 ‘괜찮지 않은 일’ 그리고 내 취향대로 노래를 틀고 곡을 소개하는 ‘그런 날 이런 노래’ 시간이 있다. 처음에는 매주 컨셉을 잡고 곡을 소개할까 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인디 신의 신곡을 열심히 소개하다 보니 인디 신보를 소개하는 코너에 가깝게 되었다. 이 코너를 위해 매주 새롭게 발매된 신곡을 들어본다. 워낙 많은 신곡이 있긴 하지만 방송에서 소개되는 곡이 많지 않은 데다가 홍보가 없는 경우도 있어 여기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음악들도 많다. 자기소개나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할 때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혹시 이 방송을 듣고 계시다면 꼭 심의도 넣고 곡 소개와 팀 소개도 더 써주시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매번 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코너는 부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초대석(심지어 코너 제목도 없는)이다. 10개월 가까이 진행했는데 초대석은 고작 5회뿐이다(이 글을 읽어주실 때쯤이면 6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역시 인터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편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는 인물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이왕 인터뷰를 할 거면 좋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좋은 인터뷰는 참 어렵다. 너무 알려져 있어서, 너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뻔한 질문만 오가는 일이 너무 많다.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입장에서 이해가 되는 점도 있지만 그래도 뻔한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이 더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순간은 언제나 너무 귀하다.
개인적으로 ‘해상도가 높은 인터뷰’라고 표현하는 이런 좋은 인터뷰는 주어진 대본과 정보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작품에 대한 솔직하고 개인적인 체험이 필요하다. 때로는 그런 것이 부족하더라도 인간적인 매력과 재치가 그 역할을 할 때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좋은 인터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잘 정돈된 호기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매번 나의 호기심이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초대석은 아주 띄엄띄엄 진행되고 있다. 그래도 초대에 있어서 나름의 원칙은 있다. 최근 신보를 발매한 뮤지션이어야 하고, 직접 창작하는 뮤지션을 모시겠다는 것. 그러자면 역시 사적으로는 잘 모르는 분들을 모셔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요즘에는 SNS가 있어 비교적 연락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다른 정보를 찾기 힘든 뮤지션도 SNS는 운영하고 있는 데다가, 나 역시 실명의 SNS를 운영하니 정체를 미리 밝히고 상대방의 의심을 피하고 신뢰를 얻기도 쉽다(밴드 ‘문없는 집’은 첫 메시지를 받고 사칭이거나 피싱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첫 인터뷰를 평소에 같이 공연하거나 SNS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김사월님을 모셨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로는 정말 초면인 분들만 모셨다. 물론 사월님을 처음으로 모실 때도 엄청 긴장했고, 이후 만난 김뜻돌님, 황푸하님, 일레인님, 밴드 문없는집은 진짜로 초면이라 더 힘들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인터뷰 비디오를 올리겠다는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지면을 통해 드립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상파 라디오 인터뷰 요청을 처음으로 받았던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 때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첫 음반이었던 《앵콜요청금지》를 발매하고 난 후, 첫 라디오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네? 뭐라고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비슷한 반응이었다. ‘방송국에서? 왜 우리를?’ 이런 마음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제 막 첫 음반을 어설프게 만들어낸 아마추어 밴드를 신해철씨가 진행하는 방송에서 부르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방송국을 갈 것이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SBS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왠지 더 엄격해 보이는 로비와 출입 절차를 거쳐서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늦은 시간이어서 창밖의 불빛은 더 예뻐 보였고, 방송국 안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왠지 더 긴장되고 겁이 나기도 했다. 하필 디제이도 ‘마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카리스마로 유명한 신해철씨였으니. 아마도 따듯하게 대해 줬겠지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침묵과 어색한 웃음만이 가득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답도 바로 나오지 않아서 머뭇머뭇거리던 첫 라디오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최근에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그 당시의 방송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어설픈 사람들을 데려와서 한마디라도 더 말을 건네는 신해철씨의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굴까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좀더 알아가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건네는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비록 당시에는 한참 동안 말을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앵콜을 요청하면서 새내기 음악인을 격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노래는 어떻게든 알려지고 사랑받는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수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다. 그 우연의 많은 부분은 조건 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다정한 시선은 그 끝에 있는 것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 덕에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어설프게나마 버텨올 수 있었다.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이 브로콜리너마저의 이야기를 담아준 것처럼 오늘 나의 시선도 또 다른 음악가와 음악을 향하고 있다. 다정하게.
<앵콜요청금지> 브로콜리너마저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바라고 있다 해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제발 내 마음 설레이게 자꾸만 돌아보게 하지 말아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스쳐 지나갈 미련인 걸 알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말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때 그 마음이 부른다고 다시 오나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순 없어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런 말하는
그런 내가 잔인한가요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되겠어 이런 말 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