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배우 이주영,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서신 교환①
2021-03-09
글 : 이주영 (영화배우)
글 : 이와이 슌지 (영화감독)
이주영 배우 송신, 이와이 슌지 감독 수신
<라스트 레터>

전작 <립반윙클의 신부>(2016) 이후 이와이 슌지 감독이 5년 만에 내놓는 <라스트 레터>(2월 24일 극장 개봉)는 편지로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리(마쓰 다카코)는 세상을 떠난 언니 미사키를 대신해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언니의 첫사랑 쿄시로(후쿠야마 마사하루)를 마주한다. 쿄시로는 유리를 미사키인 줄 알고, 유리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쿄시로와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첫사랑에게 과거의 애틋한 기억과 마음을 편지로 전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러브레터>(1995)를 떠올리게 한다.

<라스트 레터>

<씨네21>은 지난해 <야구소녀> 개봉 당시 <씨네21> 유튜브 영상에서 <러브레터>에 대한 진한 애정을 고백한 배우 이주영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만남을 주선했다. OCN 시리즈 <타임즈> 촬영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주영은 영화를 미리 보고 애정을 듬뿍 담아 편지를 썼고, 이와이 슌지 감독 또한 이주영의 출연작 <야구소녀>를 챙겨보고 정성스레 답장을 보내왔다. 서울과 도쿄, 거리는 가깝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만나기 힘든 두 도시에서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이어갔다. 언젠가 만나자는 약속을 굳게 하면서.

<야구소녀>에 출연한 배우 이주영. <라스트 레터>와 감독의 전작 <러브레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편지에 담았다.

이와이 슌지 감독님께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서신으로나마 닿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이주영입니다. 감독님의 오랜 팬임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왔었는데, 이렇게 연이 닿으니 제가 적극적으로 어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전세계적으로 영화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영화들이 속속 아쉬운 결정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OTT가 성황인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극장이 사랑받는 시대가 그립기도 합니다.

제가 출연한 <야구소녀>라는 아주 작은 독립영화는 지난해 6월 한국에서 개봉해서 관객 3만7천명이라는 소소하지만 감사한 스코어를 냈습니다. 그리고 올 3월 일본에서 개봉한다는 기분 좋은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팬데믹으로 국경간 경계가 여느 때보다도 굳건해진 상황에서도 우리는 영화라는 매개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곧 한국에서 개봉할 감독님의 영화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작 제목이 ‘라스트 레터’인 것을 보고 많은 기대와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감독님의 전작인 <러브레터>가 연상되었으니까요. 영화를 보니 과연 이번 작품은 감독님 세계의 연장선이기도, 또 완전히 새로운 선언이기도 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으면 주저 없이 <러브레터>를 꼽곤 합니다. 제가 연기를 시작하고 영화라는 세계에 뛰어드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오타루로 여행 갔을 적에 영화 속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 풍경을 사진기에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여름이라 아쉬웠지만 영화의 정취가 고스란히 거기 보존되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맙게도 겨울이 오면 한국의 극장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러브레터>가 걸리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극장을 찾아 느꼈던 여운과 감흥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러브레터>의 세계 안에 속한 인물들은 현실에서 다소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잊힌 기억들을 캐내고 그때의 나와 그때의 너와 연결되어 있고 싶어 하는 마음들 때문일까요. 하지만 누구보다 현실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충만한 이들이기도 하다고 느꼈습니다. 기억 속에서 죽은 이를 잘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도요. 내 안에만 갇혀 있게 두고 싶지 않은, 성숙한 이별.

그와 비슷하게 <라스트 레터>의 인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미사키를 떠나보냅니다. 엄마의 자살을 주위 사람들에게 병사로 전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딸 아유미가 있습니다. 아유미는 엄마가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세상은 너무 쉽게 죽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창 시절에 엄마를 사랑했던 쿄시로라는 남자를 통해 위로받은 아유미는 엄마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엄마가 남긴 편지를 열어볼 수 있게 됩니다.

한편으로 저는 쿄시로가 가증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왜 미사키를 구출해내지 못했을까. 그렇게 사랑했다면 왜 진작 손 내밀지 않은 걸까. 추억 속에 담아두고 책 속에만 가둬두는 것을 정말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미사키는, 미사키의 삶은, 왜 져버리고 난 후에도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생각들로 괴로웠습니다. 그녀가 너무 불쌍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녀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의 삶 전체는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라스트 레터>는 <러브레터>와 배경지도, 계절도 다릅니다. 감독님의 고향인 센다이에서 여름에 촬영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시작되고 오래지 않아 ‘아, 이건 러브레터!’라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언니의 동창회 안내장을 건네받은 유리가 차를 출발시키는 동시에 음악이 깔리고 뒤 유리창으로 우산을 들고 선 아유미와 소요카의 모습이 보입니다. 불현듯 받아들게 된 동창회 안내장이라는 작은 매개가 모두의 세계를 세차게 뒤흔들게 될 거란 예고입니다.

두 영화 사이에 실은 <장옥의 편지>라는 영화가 한겹 더 존재해 있습니다. 2016년 한국에서 작업한 단편영화이고, 세 작품의 플롯은 연작의 느낌이 강합니다. 이렇게 세 작품을 관통하는 긴밀한 연결성에 오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또다시 협업한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배우와 <4월 이야기>의 마쓰 다카코 배우의 영화 속 얼굴들도 그렇고요. 바로 이런 점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무해가 넘는 세월의 간극은 스크린 속에서 얽히고설켜 서로를 닮은 모습을 띱니다.

혹여나 이러한 감상이 감독님에게는 내키지 않는 바일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듭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감독님의 세계이지만 확연히 다른 정체성을 가진 별개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관통하는 지점을 발견하며 즐거워하는 관객도 많을 테지요.

이러한 감상에 따른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실은 연결되는 지점 따위 없다, 라는 쪽의 답변이 돌아오면 또 그것대로 흥미로울 것 같달까요. 저의 경우 별 의도 없이 연기한 장면에 대해 설명을 요구받을 때면 그런 것 따위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리곤 합니다. 하하. 그날 현장의 공기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작용으로 장면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하다못해 후반작업으로도요.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능력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질문을 드리자면 같은 시나리오로 중국에서도 작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어 장벽도 있고, 배우 및 속해 있는 공간의 공기도 달랐을 텐데 그 안에서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신나서 주저리주저리 말하다 보니 제 감상이 지나치게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감독님의 팬들을 대표해 보내는 편지인데, 그들이 이 정도로 만족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획에 대한 제 개인적 바람은, 감독님과 제가 주고받는 편지가 여느 딱딱한 개봉 인터뷰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했습니다. 내밀하고도 솔직한 감독님의 영화 세계를 알고 싶은 욕망,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욕망이 상충하여 나름의 중도를 지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혹시 제게도 궁금한 점이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든 괜찮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기회로 감독님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감독님의 영화를 응원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올해도 아름다운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7일 이주영 드림

*본 편은 <배우 이주영, '라스트 레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서신 교환 ②>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제공 미디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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