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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한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하영 작가 - 영화를 연출하듯 소설을 쓴다
2021-03-18
글 : 남선우
사진 : 오계옥

2021년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으로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하 <조명등>)가 선정되었다. 필립 가렐의 영화로부터 제목을 따온 이 소설에는 영화를 전공한 남자와 그에게 교양 강의를 들은 여자들의 한 때가 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남자는 예술을 말하며 시선을 끌고, 우울을 흘리며 관심을 얻는다. 자신의 빈곤과 상대의 여유를 견주어야 했던 여자들은 첨벙거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글을 쓴다. 남자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와의 시간이 어떤 자국을 남겼는지 들여다보며 말이다.

2019년 단편소설 <영향>으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한 전하영 작가 또한 영화와 함께한 나날을 되새기며 글을 쓰고 있다. 그는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단편 <빨간모자> <박제된 공주> <프레임 워크>를 연출했고, <북촌방향> <완벽한 파트너> 연출부로 일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필름 앤 비디오 코디네이터로 재직 중이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네편의 소설에는 영화가 남긴 파동이 찰랑인다.

-2019년 겨울에 발표한 <남쪽에서>는 주인공이 중학생 시절 가출했다가 하룻밤 만에 돌아온 해프닝을 회상하며 시작한다. 어떤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어떻게 영화 공부를 하게 됐나.

=중고등학생 때 <스크린> <로드쇼> 같은 잡지를 많이 보았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씨네21>을 열심히 읽었다. 영화를 꿈꾸게 만드는 시대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도 연극영화과로 가고 싶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점수를 맞춰 다른 전공을 택하긴 했지만 독립영화협의회,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영화 강의를 들으며 계속 영화를 쫓아다녔다. 그러다 운 좋게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연출 전공으로 합격했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웃음)

-그 시간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카데미에 들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배제되는 상황도 있었고, 엄한 선생님들로부터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영화에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학교를 그만두라는 얘기도 들었고.

-그러나 영화를 그만두지 않고 시카고예술대학으로의 유학을 택했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땐 경험이 적어서인지 사람을 찍는 게 두려웠다. 병아리를 데려다 찍기도 하고, 미디어아트에 가까운 작품을 극영화 시나리오 대신 제출하기도 했다. 덕분에 실험적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내가 장편 상업영화 감독을 기르려는 아카데미의 정체성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좋아했던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나 홍상수 감독님이 공부를 한 학교로 가보자고 결심했다. 다행히 시카고에서는 아카데미에서와 달리 모두가 나를 원했다. (웃음) 예술영화를 환영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비교적 엄격하지 않은 분위기가 좋았다. 2010년에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2017년 여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다. 그럼 그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연출부 일도 하고, 번역도 하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큐레이터도 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라는 조언도 들었지만 감독이 목표였기에 현장에 있으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투자를 받을 만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것에 지쳤던 게 아닐까. 한편으로 그 정도로 일이 안 풀리면 빨리 그만뒀어야 하는데, 내가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그때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나.

=당시 미술창작 레지던시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원래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해서 입주까지 비는 시간에 별 생각 없이 소설 수업을 들었다. 합평 시간에 내 작품이 엄청 까였다. 이렇게까지 까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웃음) 약간의 충격과 함께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런데 레지던시에 들어간 지 두세달이 지났을 무렵, 레지던시를 운영하던 기업이 갑작스럽게 사회공헌 사업을 정리하면서 작가들을 쫓아낸 거다. 예술인복지재단의 중재를 받으며 6개월 정도 다퉜는데, 그렇게 붕 떠버린 시간에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사실 시나리오도 써봤지만 지문과 대사를 쓰는 것보다 인물의 내면을 써내려가는 게 나와 더 잘 맞는다는 걸 그때 느꼈다.

-등단작 <영향>의 주인공 난희는 오하이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감독 지망생이다. 홀로 작업을 지속하며 불안을 견디는 인물의 이야기에 왜 ‘영향’이라는 제목을 붙였나.

=시카고를 다녀온 게 내 인생에 큰 변화이자 단절을 마련해줬다.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자동적으로 다음 스텝이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유학도 다녀왔기 때문에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성인 나를 동료로 여기지 않거나 다른 관계로 대하려는 사람들을 겪으며 일종의 환멸을 느꼈다. 그러면서 내가 시카고에서 얻은 좋은 영향들로부터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시카고에서의 공부로 내가 바랐던 것들을 힘들게 얻었는데 그것들이 더이상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태를 느낀 거다. 어렸을 때는 하나의 목표 지점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면 이제는 5년에 한번씩 과거의 것들이 흩어지고 재조립되며 내 자아를 바꿔가는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소설을 쓰고 제목을 붙였다.

-문화계 내 미투 운동을 지켜보며 느낀 바도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조명등>의 장 피에르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영화계에서 어린 여성이자 감독 지망생으로서, 취약한 상태에서 차별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문화계 전반에 유사한 사건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고 나서 영화계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여성 작가들이 소설화하고 있는데 천희란, 임솔아 작가 등의 글을 읽고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용감해지고 싶다.

-자신이 견뎌온 세계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

=내게 남은 에너지나 열망이 날아가버리는 게 싫어서,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좀 놀라운 게, 내 소설이 ‘여성 예술가 소설’이라고 계속 언급되는 것이다. 미술쪽으로 넘어오면서도 내 주변에는 온통 예술을 하는 여자들뿐인데, 이게 그렇게 가시적이지 않은 영역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요즘은 90년대생 여성 예술가들을 주목하는 흐름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통과해온 시간은 여성들에게 되게 엄혹한 시대였다는 걸 절감했다. 그렇지만 이제 나도 기성세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야기를 맺는 <조명등>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앞으로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지금까지는 한풀이로 글을 쓰는 초보작가 단계였다. 아직도 그 자장권 안에 있는데, 앞으로는 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때로 소설을 쓰면서 영화 찍는 것 같은 재미를 느끼기도 하는데, 연출한다는 생각으로 쓴 장면들이 꽤 있다. 무얼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그런 재미를 느끼며 다양하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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