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배우 윤여정이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정이삭 감독이 한국 이민 1세대 가족으로서 겪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미나리>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관하는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크리스티나 오), 감독상(정이삭), 각본상(정이삭),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음악상(에밀 모세리) 등 모두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윤여정 배우의 후보 지명은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스티븐 연도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로 기록됐다.
현재까지 <미나리>로 전세계 각종 시상식에서 33관왕을 차지한 윤여정 배우는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아시아 여성 배우로는 네번째 여우조연 후보 지명된 배우로 기록됐다. 만약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된다면 이는 1957년 30회 시상식에서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64년 만의 수상 기록을 세우게 되는 셈이다.
<미나리>는 미국 제작사인 플랜B에서 만들고 미국 배급사인 A24에서 배급을 맡은 미국 영화다. 정이삭 감독이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미국 제작사와 함께 영화를 찍었지만 우리는 한국 관객을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기 위해 저희가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씨네21 1295호 인터뷰 ‘<미나리> 정이삭 감독, <미나리>는 보편적인 모든 인간들을 위한 영화다’)”라고 언급했듯, 이 영화는 한국인 이민 세대의 삶과 정서를 깊이 있게 묘사한다. 최근 열렸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영화 전체 대사의 50% 이상이 외국어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외국어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 때문에 (미국 내 시상식임에도)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지명되어 수상까지 하는 일도 있었다.
윤여정 배우가 후보에 오른 여우조연상 부문에는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바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클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함께 지명되어 경합을 벌인다. 다른 후보들의 이력도 화려하다. 마리아 바칼로바는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으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 후보에도 올랐고 불가리아의 여자 배우로는 최초로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는 올해로 아카데미 후보 지명만 8번째이고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은 <더 페이보릿>으로 2019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자다.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윤여정 배우와 마찬가지로 올해 처음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한편,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도 한국계 감독인 에릭 오 감독의 <오페라>가 후보 중 유일한 아시아 작품으로 지명됐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한국 시각으로 4월 26일 오전 9시부터 열릴 예정이다.
아래는 윤여정 배우가 직접 언론에 공개한 시상식 후보 지명 소감 전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직접 뵙고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캐나다에서 어젯밤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이 시기에 놀러 다녀온 것은 아니고 나름 외화벌이를 하러 촬영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지금 나이 74세인데 이 나이에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고 여러분의 응원에 감사를 전해야 한다는 건 너무 아는데 이렇게 밖에 인사를 못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지인들도 축하를 해주고 싶어 하는데 격리 중이라 만날 수 없어 너무 속상합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응원이 정말 감사하면서도 솔직히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올림픽 선수도 아닌데 올림픽 선수들의 심적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고 사실 저랑 같이 후보에 오른 다섯 명 모두가 각자의 영화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상을 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순위를 가리는 경쟁 프로는 애가 타서 못 보는 사람입니다. 사실 노미네이트가 되면 이제 수상을 응원하시고 바라실 텐데 제 생각에는 한 작품을 다른 배우들이 연기해서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기에 이 노미네이트만으로도 상을 탄 거나 같다고 생각됩니다. 응원에 정말 감사드리고 이 나이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저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교포 2세들이 만드는 작은 영화에 힘들지만 보람 있게 참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이 영화 시나리오를 저에게 전해주고 감독을 소개해 주고 책임감으로 오늘까지도 함께해 주는 제 친구 이인아 피디에게 감사합니다. 같이 자가격리 중이라 어제 소식을 같이 들었는데 제 이름 알파벳이 Y 다보니 끝에 호명되어 이 친구도 많이 떨고 발표 순간엔 저 대신 울더라고요. 어쨌든 제가 이런 영광과 기쁨을 누리기까지 저를 돕고 응원하고 같이 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을 땐 원망을 하게 되지요. 제가 많이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네요.
다시 한번 상황상 직접 인사 못 드려 죄송합니다. 응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