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가 인종 다양성을 이유로 다시 한번 구설에 올랐다. <버라이어티> <더 랩> <할리우드 리포터>의 3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할리우드에서 영화 및 TV시리즈의 홍보를 담당하는 70개 이상의 홍보사들은 HFPA가 인종 다양성과 관련해 가시적인 혁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HFPA와 관련한 모든 행사와 인터뷰에 이들 홍보사가 담당하는 셀러브리티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예고했다.
2018년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는 미투 캠페인을 계기로 설립된 비영리기구, ‘타임스 업’이 HFPA 멤버 구성에 다양성을 요구하는 #TimesUpGlobes 캠페인을 시작한 뒤 이어진 두번째 움직임이다. 이번 홍보사들의 단체 행동에는 5월 7일 개봉을 앞둔 <블랙 위도우>의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를 담당하는 홍보사도 포함되어 HFPA의 반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타임스 업은 지난 2월 26일,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이틀 앞두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골든글로브 멤버 87명 중 흑인 회원은 단 한명도 없다”라며 조직의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는 #TimesUpGlobes 캠페인을 시작했다. 2월 21일 <LA타임스>가 보도한 HFPA에 관한 리포트에서 촉발된 이 캠페인은 즉각적인 효과를 드러냈다. 이틀 뒤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오프닝을 맡은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인종 다양성이 부족한 HFPA의 현실을 비꼬는 자조적인 콩트를 선보였으며, 전현직 운영진이 이 문제에 대해 통감하고 있다고 무대 위에서 발언하는 등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이날 골든글로브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3명의 흑인 배우(채드윅 보스만, 존 보예가, 대니얼 컬루야)에게 트로피를 수여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HFPA 운영진은 “흑인 대표성은 다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리는 흑인 저널리스트가 필요하다”고 발언했고, 이후 HFPA는 성명을 통해 13명의 흑인 기자를 회원으로 영입해 현재 87명인 회원수를 1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성명은 오히려 타임스 업으로부터 “피상적인 해결책”이라는 핀잔을 들었으며, 이후 타임스 업은 일련의 제안을 발표했다. 이 제안에는 현 운영진 퇴진, 전체 회원 탈퇴(1년 뒤 재가입 가능), 새로운 회원 가입 기준 제정, 회원 수 300명으로 확대, 미국 외 지역에서도 가입 가능 등이 포함됐다.
인종 다양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할리우드의 교섭단체, 감독, 배우들은 타임스 업의 캠페인에 호의적이다. 컬러 오브 체인지, 미국감독조합(DGA), 미국배우조합(SAG-AFTRA) 등의 단체들 역시 이 캠페인 이전에 HFPA에 인종 다양성을 요구한 바 있다.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해밀턴>을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 후보로 소개한 에바 두버네이 감독은 “사람들이 앞에서 이야기하진 않지만 골든글로브 트로피가 무거운 이유는 트로피를 수상함으로써 따르는 경제적인 효과 때문이다. (중략) 반짝거리는 이 트로피는 제작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미국배우조합도 “다양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HFPA는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의 훌륭한 스토리텔러와 스토리를 발견하고 축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며 의견을 더했다.
한편 흑인 기자를 13명 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HFPA에 대해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해외 기자들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HFPA는 이전에도 회원 가입에 있어서 배타적이고 불투명한 제도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외신 기자들은 이를 두고 다른 인종과 다른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미봉책일 뿐이라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