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폴은 이상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모두 주말 예배 대신 혼자 십자가를 끌고 다니는 폴을 멀리한다. 오직 새로 이사 온 제이콥의 가족을 제외하곤 말이다. 폴은 지역사회의 아웃사이더는 이민자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며 소통의 창구가 된다. 폴 역할을 맡은 윌 패튼은 ‘가장 미국적인, 미국의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지닌 배우’다.
1983년 데뷔 이래 <아마겟돈>(1998), <식스티 세컨즈>(2000) 같은 블록버스터는 물론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해온 그는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활약해온 베테랑 배우 윌 패튼에게 뭔가 비정상적이고 겉돌지만 한편으론 내면이 따뜻하고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로 뭉친 캐릭터 폴에 대해 물었다.
-<미나리>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시나리오는 첫인상이 어땠는지.
=정이삭 감독과는 이미 <아비가일>(2012)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매우 즐거웠기에 다시 같이할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정이삭 감독이 <미나리> 시나리오를 내게 보여주었을 때 나는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시나리오를 읽었다. 아마 이 시나리오를 접한 배우는 누구라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두 차례 호흡을 맞춰본 정이삭 감독은 어떤 연출자인가.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주는 편인지.
=그는 진심 어린 친절함과 관대함을 지니고 있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매우 잘 챙겨준다. 현장에서 이런 여유를 가지긴 쉽지 않다. 감독으로서 그의 빼어난 면은 이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일하기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동시에 작업은 아주 섬세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미나리>는 예산이 넉넉지 않았는데, 촬영 중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나는 평생 수많은 세트장에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험한 날씨엔 익숙한 편이다. 그럼에도 지난여름은 너무 더워서 단 5분 만에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세트장에는 그늘도, 에어컨 시설도 없었다. 물론 이건 모두에게 미리 고지된 사항이었지만 알고 있었다고 해서 더위가 가시진 않았다. (웃음) 그럼에도 출연자 입장에서, 우리끼리 함께 있다는 점만으로도 너무나 멋진 경험이었다. 이런 분위기의 현장을 경험하는 건 드문 행운이다.
-폴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밀려난, 외부인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아칸소주를 찾아온 한국인 가족과 친해지게 된 계기도 지역에서 겉도는 사람들이란 공통분모 덕분이었다.
=내가 느낀 <미나리>는 편견에 관한 이야기다. 제이콥의 가족처럼 폴 역시 남들과는 다른 아웃사이더다. 편견은 대부분 당신이 누군가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전에 판단을 내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건 피부색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약간 이상하게 보이는 외견이나 말투, 심지어 그저 신고 있는 신발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이콥 가족과 폴은 서로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품어준다는 점에서 편견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윤여정, 한예리 등 한국 배우들과도 이번에 함께 작업했는데.
=아름다웠다. 언제까지고 그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완벽히 사로잡혔다. 윤여정, 한예리 배우 둘 다 이미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직접 부딪치는 장면이 좀더 많았던 한예리 배우의 연기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연기에는 영혼과 진심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