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제작사가 한배를 탔다. 다이스필름(대표 김성우), 리양필름(대표 이한승), 영화사 미지(대표 서종해), 오스카10 스튜디오(대표 장진승), 영화사 람(대표 최아람), 영화사 일취월장(대표 최문수)은 지난 3월 2일 연합 법인 플랫피(Plat P)를 설립했다. 모두 영화 두편 이상씩 제작한 중견 제작사들이다. 플랫피는 플랫폼(Platform)의 ‘플랫’과 프로듀서 혹은 프로젝트의 ‘피’(P)를 합친 말이다.
과거 제작사들이 공동 제작을 진행하거나 코스닥 상장을 위해 인수 합병하는 사례가 많았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에 소속된 회원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를 설립한 협업 방식이 있었지만 연합 법인을 설립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제작사들간의 합종연횡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인다. 김성우 플랫피 대표는 “플랫피에 가면 매력적인 프로젝트와 능력 있는 프로듀서들을 만날 수 있다. 실제로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도움을 주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6개 제작사가 연합 법인을 설립한 이유는 뭔가.
김성우 현재 한국 영화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극장이 침체기를 겪는 반면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플랫폼이 시장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디즈니+, 애플TV+, 아이치이 등 글로벌 OTT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고, 쿠팡이나 신세계 같은 신규 플랫폼도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플랫피는 혼돈의 산업 상황에서 영화든 드라마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게 됐다.
-CJ, 롯데, 쇼박스, NEW 같은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양질의 IP를 확보해 직접 제작하며 스튜디오로 진화하고 있고, 많은 제작자들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줄을 선 상황에서 제작사들간의 합종연횡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보인다. 소규모 운영이 불가피한 국내 제작사들이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장진승 영화 제작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다른 제작사와 협업하는 데 관심이 큰 건 분배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혼자 제작을 진행하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김성우 대표로부터 플랫피의 필요성에 대한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6명 모두 한두 작품 이상 제작한 제작자들이고, 서로를 너무 잘 알며 오랜 시간 신뢰를 다진 사이라 이들과 함께 변화하지 않으면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서종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혼자 영화를 제작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거다. 서로 끌어주는 회사들을 보면서 너무 부러웠고, 혼자서 다 하긴 힘들다 싶었다. 하지만 플랫피를 함께하기로 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생긴 것 같아 힘이 된다. 플랫피가 나처럼 고민하는 후배 프로듀서에게 나침반 같은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작자 6명의 공통점이라면 과거 대형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성우, 서종해, 최문수 대표는 과거 싸이더스 시절을, 이한승, 장진승, 최아람 대표는 CJ엔터테인먼트 시절을 함께 보냈다.
이한승 20년 가까이 투자와 제작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영화든 시리즈든 계속 만들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영화 외적인 만남을 통해 신뢰 관계를 충분히 구축했고, 믿을 만한 태도를 갖춘 사람들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산업 환경에서 함께하면 더 많은 새로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라는 점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아람 긴 시간 동안 가까이서 지켜봤고, 앞으로도 같은 길을 걸을 동료들이라 뭐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최근 들어 제작자끼리 연합해 힘을 모으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던 차에 김성우 대표가 제안해왔다. 당장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영화산업을 선하게, 또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
최문수 김성우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제작자에 대한 신뢰가 가장 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좋은 아이템이 쌓이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웹툰 플랫폼이 자신의 웹툰을 가지고 영화나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면 6명의 제작자가 가진 네트워크를 동원해 그 웹툰에 맞는 작가나 감독을 붙여 최상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원천 콘텐츠를 가진 회사든, 자본을 가진 회사든, 영상 콘텐츠 사업에 관심이 많지만 어떻게 진행할지 몰라 주저하는 회사든 언제든 연락을 주기 바란다.
-제작사들이 연합 법인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인데.
김성우 법인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다. 6개 제작사가 각각 두개씩 낸 프로젝트 총 12편이 플랫피의 라인업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 투자, 제작 등 어떤 형태로 진행할 수 있을까 했을 때 이 모든 과정은 계약서가 필요한 일이었다. 법인 형태를 갖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어떠냐는 전문 변호사의 자문에 따라 내부 상의를 거쳐 연합 법인을 만들었다. 6개 제작사들은 적게는 다섯편, 많게는 열편 내외의 프로젝트를 각자 진행하고 있는데 이 회사들이 가진 프로젝트 모두 플랫피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플랫피에 참여하는 제작사 수가 많을수록 프로젝트 수도 덩달아 증가하는 셈이다. 이같은 설계는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한승 가령 제작사 수가 50개로 늘어나 회사당 두편씩 계약해도 라인업이 100편이 된다. 플랫피는 영화나 시리즈가 필요한 곳을 협의할 때 계약된 소속 프로젝트의 에이전시 역할을 한다. 라인업에 포함된 프로젝트를 업계에 소개하고, 기획개발을 진행하며, 투자 등을 유치한 뒤 최종적으로 제작이 결정됐을 때 자회사 형태의 SPC로 공동 제작에 참여한다. 수익이 나면 수익의 일정 지분을 프로젝트의 원제작자와 계약 내용에 따라 분배하는 식이다.
-플랫피에 참여하는 기준은 뭔가.
최아람 기성, 신인 구분하지 않고 플랫피에 관심 있는 프로듀서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플랫피는 플랫폼이기에 새로운 프로젝트는 계약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제작사가 있는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시나리오작가, 감독, 프로듀서 등의 개별 프로젝트로도 가능하다. 경력이 없는 신인 프로듀서와 감독이 팀을 구성해 개발한 프로젝트의 경우 플랫피는 작품에 투자하려는 투자사와 프로듀서, 감독 양쪽 모두에게 신뢰감을 제공할 수 있다.
최문수 공동 제작도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플랫피에 소속된 프로듀서의 성향과 이력에 맞게 제작해야 할 프로젝트를 배분하거나 필요하다면 프로듀서들이 결합한 형태의 제작 서비스도 제공한다. 한국 로케이션을 기획하는 외국 프로젝트에 경험 많은 한국 프로듀서를 소개하는 에이전시 역할도 할 수 있다.
-아직 설립 초반이라 섣부른 예측은 어렵지만 향후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거나 법인 매각을 염두에 두고 있나.
김성우 그게 목적이나 목표는 될 수 없다. 플랫피의 성과가 나오고 또 쌓이면 그런 제안들이 들어오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 플랫피 같은 방식의 또 다른 플랫폼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장진승 플랫피가 하는 걸 보면서 몇몇 제작자가 마음 맞는 동료들과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최아람 플랫피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