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의 역할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같은 장면을 두고 음악이 없는 버전과 있는 버전을 비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은 장면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을 조합함으로써 해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체감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는 똑같은 행위를 눈으로 보고 있어도 단조 선율이 빠르고 짧게 진행되는 걸 들으면 위협이 다가옴을 예상하는 반면 잔잔한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를 들으면 안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관객에게 의도된 감정을 제시하고 스토리를 예고하는 일을 영화음악의 존재 이유라 알고 있었다. 작곡가별로 조성, 편곡, 테마의 활용법에 있어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역할에서 벗어나는 영화음악은 잘 없으며, 오히려 더 적확하게 기능하기 위해 음악을 쪼개고 쪼개는 게 요즘의 추세다. 짧은 단위의 곡이 점점 많아져 이제는 마흔 트랙 이상이 담긴 음반도 등장하고 있으니까.
<미나리>의 O.S.T는 여러 면에서 반대다. 영화 안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지분이 양적으로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음반에 담긴 곡은 열여섯 트랙에 불과하고, 가사가 없는 스코어 음악만 놓고 보면 곡별로 성격이 크게 다르지도 않다. 대체로 확실히 슬프지도 확실히 기쁘지도 않은 오묘한 분위기를 지닌 음악들이다. 이 때문에 관객은 특정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이 향할 방향을 선뜻 잡아내지 못한다. 이 작품을 두고 “내가 생각하던 이야기가 아니었다”거나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감에 휩싸였다”는 반응이 나타난 것에는 음악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대신 이 영화의 음악은 작품이 지닌 핵심적 정서를 공기처럼 형성해낸다. <미나리>라는 영화를 통해 관객이 경험하는 광활한 자연과 복잡한 감정을 음악적 언어로 치환해 마치 숨 쉬듯 애쓰지 않고도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골목길 이정표처럼 파편화되어 기능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정서와 미감으로 먼저 설득하는 영화음악. 순수한 감상을 목적으로 이 사운드트랙을 다시 듣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PLAYLIST+ +
<라스트 블랙 맨 인 샌프란시스코> O.S.T
201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작품. 에밀 모세리가 처음으로 음악을 담당한 장편영화로, 그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물론 영화의 핵심 정서를 음악적 언어로 바꾸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구보다 도시를 사랑하지만 도시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의 심정을 흑인 영가, 뉴올리언스 재즈의 요소와 결합해 표현한 수작.
더 딕 <You and I >
영화음악가가 되기 이전, 뮤지션으로서의 에밀 모세리는 2012년 록밴드 ‘더 딕’을 통해 데뷔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한 이 4인조 밴드에서 그는 베이스 기타와 노래를 담당, 2018년까지 두장의 정규 음반과 네장의 EP를 부지런히 만들었다. 강렬한 사운드가 곳곳에 묻어나는 데뷔 앨범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는 이 미니 앨범은 <미나리>의 음악을 좋아한 사람들이 듣기에도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