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영화 '레드' <해피 해피 브레드>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등을 연출한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신작
2021-04-06
글 : 김태호 (객원기자)

토코(가호)의 삶에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상류층 남편과 결혼하고 귀여운 딸을 두었지만 토코는 너무 외롭다. 어느 날 연인이었던 구라타(쓰마부키 사토시)와 우연히 마주치고, 구라타는 토코의 재취업을 돕는다. 이는 오래전 끊겼던 두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계기가 된다. 바위틈 사이로 내린 민들레 뿌리가 돌덩이를 쪼개듯 토코의 공백 지대에 자리 잡은 구라타가 그녀의 균열을 벌어지게 한다.

<레드>는 <해피 해피 브레드>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등을 연출한 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던 인물이 사랑과 일에서 자아를 충족하는 과정을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으로 관조한다. 대사는 줄이되 감정을 머금은 표정을 클로즈업함으로써 프레임에는 말에 싣지 못한 정념이 섬세히 번진다. 주연을 맡은 가호와 쓰마부키 사토시의 안정적인 연기 호흡도 <레드>의 양감을 보드랍게 채운다.

토코는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은 가사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딸은 아직 어려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다. 행복을 추구하며 몸부림칠수록 토코를 옭아맨 가정의 의무가 그녀를 질식하게 한다. <레드>는 평범한 러브 스토리의 외피를 두른 채 여성이 처한 모순을 사회문제화한다. 개인에서 출발해 보편으로 확장하는 영화의 포커스가 시의적절한 화두를 던진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천국 부문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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