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장영엽 편집장] 윤여정의 여정
2021-04-23
글 : 장영엽 (편집장)

“여정 윤.”(Yuh-Jung Youn) 지난 1년간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익숙한 한국 배우의 이름이 낯설게 호명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왔다.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단숨에 2020, 2021 시상식 시즌의 가장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된 윤여정의 행보는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니크한 매력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영화산업 관계자들과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한국 시각으로 4월 26일 오전 9시)에서 다시 한번 ‘여정 윤’이 호명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씨네21>은 창간 26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특집호를 배우 윤여정 스페셜 에디션으로 구성했다.

두달 전 설 합본호를 통해 소개한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 기사가 배우 윤여정의 생각과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특집이었다면,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기자, 평론가, 감독, 배우, 작가, 제작자, 촬영감독, 매니지먼트 대표, PD, 스타일리스트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윤여정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한 이들의 말과 글을 통해 이 74살의 대배우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반추해보고자 했다.

20여명이 넘는 이들에게 한명의 배우에 대한 코멘트와 원고를 부탁하는 특집을 준비하며 겹치는 이야기가 너무 많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각자의 기억을 빌려 편집부 앞으로 보내온 윤여정의 조각들은 누구와도 같지 않은, 오롯한 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한명의 아티스트가 시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 때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더불어 임수연, 배동미, 김소미, 조현나, 남선우 기자가 글과 사진, 어록으로 되짚어본 윤여정의 여정은 관습적이지 않은 삶의 모습과 연기 스타일을 지닌 여자배우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어떤 방식으로 변모해왔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스페셜 에디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증언으로 추측건대, 배우 윤여정은 어쩌면 이 책을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 인생 선배로서의 한마디를 원하는 후배 연예인에게 “나 메시지 주는 거 제일 싫어해! 내가 교황이냐?”라고 응수하는 사람, 감독과 제작진에 기립박수를 선사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박수의 몫은 감독에게 돌리고 자신은 현실의 무대로 담담하게 복귀하려던 이가 윤여정이니까. 그러나 과잉된 칭찬과 표현에 연연하지 않고, 인생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음을 받아들이며, 노력한 만큼 인정받길 바라기에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예민함과 정확함을 잃지 않으려 스스로를 단련해온 배우에게 더 흥미진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얻게 되는 쾌감이 있다. 그러니 부디, 윤여정 선생님, 그 언젠가 칸에서 들으셨다는 말처럼 이 찬란한 순간들을 마음껏 ‘인조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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