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스프링 송' 유준상 감독 - 즉흥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
2021-04-29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벌써 세 번째 장편영화다.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 <아직 안 끝났어>(2018)가 각각 제천국제음악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반면 유준상 감독의 신작 <스프링 송>은 4월 21일 극장 개봉했다. 이 작품은 준상(유준상)과 같은 밴드 멤버 준화(이준화)가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일본 후지산에 가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린 음악영화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는 감독의 말대로 배우이자 감독인 유준상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보이는 동시에 영화 만들기를 다룬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준상 감독은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어 좋으면서도 어떻게 봐주실까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프링 송> 또한 음악이 먼저 나왔다. <스프링 송>은 봄의 생동감과 희망이 잘 드러나면서도 쓸쓸한 느낌의 멜로디가 인상적인데, 어떤 계기로 써내려간 곡인가.

=늘 그렇듯이 봄을 마주했고, 또 새롭게 마주할 봄에 내 젊음의 순간을 담아냈고, 그와 관련된 희망과 쓸쓸함이 반영된 곡이다. <스프링 송>을 포함해 영화에 수록된 곡들은 영화를 찍기 전에 작업한 곡들도 있지만 매일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되살려 작업한 곡들도 있다.

-이 영화는 준상과 준화가 뮤직비디오를 찍으러 일본 후지산으로 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뮤직비디오 만드는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인 셈이다.

=평소 뮤직비디오를 볼 때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궁금했었다. 이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니 재미있고 독특하다고 하더라.

-준상과 준화가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결정하고, 촬영 장소를 일본으로 정한 뒤 출연배우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즉흥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연출돼 재미있더라.

=즉흥이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거다.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즉흥적인 순간이 나올 수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 즉흥적인 건 아니니까.

=사람들이 나를 두고 즉흥적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로선 속상할 때도 있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말이다. 노래 한곡, 영화 한편을 만들기까지 여행을 다니고, 오랫동안 고민하는데 이걸 두고 ‘즉흥적’이라고 하니. 좋다,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계산해 만들어놓고 이걸 즉흥이라고 보여주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준상과 준화가 후지산으로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뭔가.

=그동안 준화와 함께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15개 도시, 유럽 10개 도시 등 여러 도시를 여행한 시간들이 많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어디가 좋을까. 후지산은 아시아 산 중에서도 높은 산으로, 봉우리는 항상 눈으로 덮여 있는 반면 그 아래는 사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선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저곳이라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로케이션 헌팅 때 후지산을 가보니 어땠나.

=촬영하기 전, 열흘 정도 로케이션 헌팅을 갔었는데 그때는 후지산을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본 남부 지방의 이토라는 도시를 추천받아 가봤는데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이야기를 담을 만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후지산이 떠올랐고, 눈 덮인 산봉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후지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헌팅은 다른 곳에서 하고 후지산을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 장소를 정한 셈이다. (웃음)

-나카가와 아키노리, 김소진, 정순원 배우는 어떤 인연으로 함께 작업했나.

=나카가와 아키노리는 내가 출연했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일본 무대에 올랐던 배우다. 나를 포함한 한국 뮤지컬팀이 일본에 초청받아 가서 그 공연을 보면서 처음 만났고, 그 인연으로 출연을 부탁했다. 소진씨와 순원씨는 뮤지컬 <그날들>을 함께한 인연으로 함께 작업했다.

-준상이 이들을 차례로 불러내 촬영하는 상황이 인과관계 없이 벌어지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계산된 장치라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나카가와가 촬영할 수 있는 일정이 2박3일이 안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순원에게 미리 얘기해 나카가와가 연기한 배역을 그대로 부탁했다. 두 사람의 연결 고리를 목도리로 설정한 것도 그래서다. 영화 속 대사에 나오듯이 순원이 연기한 인물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여자(김소진)의 마음속 연인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가상인물일 수도 있는 데다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다. 순원을 통해 그런 생각을 살짝 드러내고 싶었다.

-권혜란 실장(조감독, 소품, 동시녹음, 조명), 송재호 팀장(보조 촬영, 동시녹음, 현장 진행) 등 매니저와 주변 인물로 구성된 스탭과 함께 영화를 찍는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매니저 이우진 팀장을 쳐다보며) 우진아, 영화 찍는 거 재미있지?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을 찍을 때 재호 팀장에게 “너 사진 잘 찍니?”라고 물어보니 “수전증이 있어서 못 찍어요”라고 하더라. “한번 찍어봐”라고 시켜보니 어느 순간 포커스가 잘 맞더라. “너 이제부터 영화 스틸 찍어” 하면서 함께 촬영했다. 두 번째 영화를 찍을 때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배우 몸에 달아서 녹음했는데 소리가 안 들어가더라. 그래서 이번 영화를 찍을 때 동시녹음기사를 구할까 고민하다가 붐 마이크를 하나 사서 재호 팀장이 연습해 직접 녹음하게 했다. 이처럼 평소 영화를 안 찍어도 내 생각, 음악을 카톡방에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곤 한다.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우리가 만드는 영화가 어떤 이야기인지 잘 알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다.

-<스프링 송>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했는데 배우 유준상이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한 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예전만큼 과감하지 못하고 더욱 심사숙고하게 된다. 요즘 내적으로 갈등하는 시기인 것 같다. 살아가는 과정 같은데 이러한 변화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열정과 순수함. 배우로서 감독을 왜 하는 걸까 스스로 고민해봤는데 연기를 통해 보여주지 못한 생각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고민이 배우로서 나를 계속 자극하는 것 같다.

-과부하가 걸릴 때 어떻게 대처하나.

=요즘 그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장에선 과부하가 걸려도 해내야 한다는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4번째 장편영화도 시나리오가 이미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가 만났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좋았던 시간과 헤어진 시간 사이에 무수히 많은 시간과 그에 관한 생각을 그려내려고 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것 같다.

=더 많아지고 있고, 그만큼 더 힘들어지고 있다. 분명한 건 그러면서 내가 성숙해져가는구나 싶다.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됐고. 그것은 삶의 태도에서 나올 것이고, 삶의 태도는 연기에도 묻어날 것 같다. 반대로 창작을 계속하다보니 생각이 막혔을 때 두려움이 생기고, 왜 이렇게 힘든 생각을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 갈등하게 된다. 무언가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안 좋다는 것도 깨닫고 있다. 반성하면서 살아간다. 힘들 때마다 돌파구가 하나둘씩 생기고, 그 묘미로 작업을 계속하는 건데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은 생각들이 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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