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로부터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까치발>까지 약 10년. 권우정 감독은 그사이 엄마가 되어 “나의 확장을 놓고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그 혼돈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역시나 카메라였다. 딸의 오랜 까치발이 뇌성마비의 징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권 감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장애 자녀를 둔 다른 엄마들을 떠올린다.
유대와 동질감을 향한 작은 갈구로부터 시작된 <까치발>의 커뮤니티는 근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씩씩한 격려와 지혜로 서로를 보듬는다. 투박한 일상의 맨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자기 가족의 풍경에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창을 낸 권우정 감독. “지난 10년이 내게는 돌아보아야 할 중요한 일기장처럼 느껴진다”는 그에게 오랜만의 안부를 물었다.
-딸의 까치발을 지켜보며 장애 자녀를 가진 다른 어머니들, 장애 당사자들과의 만남을 계획한 것이 <까치발>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완성된 영화는 결국 감독 자신의 일상까지 내밀하게 다루고 있는데, 제작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처음엔 내가 가진 불안에만 집중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가족의 이야기를 하지 말고 카메라를 밖으로 향하게 놓아두려 했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결국 나 자신이 어떤 역사를 거쳐왔고 지금 어떻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타인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우리 집 바깥에서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려 했는데 제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와 내 가족 안쪽으로도 카메라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는 나는 내 안에서 답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골똘히 자기 안으로 파고들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내 삶을 투영해 나를 비추려고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즐겁고 익숙한 사고방식이다.
-자전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제작 과정에서 창작자와 어떤 상호 교류를 맺는지 실감하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는 역시 편집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웃음) 특히 나는 큰 방향성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좌충우돌하는 스타일이다. 온갖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편집 때 아쉬움이 남더라. <까치발>도 영화에 등장하는 팟캐스트 활동뿐 아니라 부모들과 같이 인형극을 하거나 극단에서 연극을 하는 등 온갖 종합예술을 다 엮어보려는 시도도 했었다.
-처음 감독과 어머니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의 주제가 되는 것이 죄책감이다. ‘혹시 나의 잘못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의식을 사회가 은연중에 심어준다는 점을 짚어냈다.
=엄마와 자녀가 개별적인 독립체로서 관계맺음을 하고 있다고 보지 않고 둘을 동일인으로 인식한다. 아이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 보이는 문제의 원인이 모두 엄마의 부족함으로 귀결되기도 하고. 나 역시 딸이 미숙아로 태어났을 때 ‘미숙아’라는 호명에서부터 완벽하게 건강한 아이로 태어나지 못했다는 사회적 규정을 느끼고 불편해졌다. 또 대번에 판명되는 장애도 있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그저 오랜 시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 속에서 불안과 기다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선언될 수도 있는 어떤 경계 위에 원치 않게 서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어쩌면 그런 식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획짓고 규정하는 일 자체가 문제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녀가 유년기일 때 모녀 관계는 특히 강렬한 애착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복잡한 희로애락을 만들어내곤 한다. <까치발>도 그런 감정의 파고를 가감 없이 담아냈다.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결국은 모녀 관계에 대해서였다. 나, 그리고 사람들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갈 때 상대를 어떻게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안고 우리 모녀 관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더니 내가 아이의 까치발에 집착한 이유 중 하나로 내 어머니와의 만족스럽지 못했던 관계를 찾을 수 있겠더라. 지후의 까치발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까치발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독과 엄마로 양립하면서 예기치 않게 딜레마를 마주한 적은 없나.
=남편은 주로 일상적이고 행복한 순간을 많이 찍었고, 나는 어떻게 하면 내 혼란과 불안의 징후를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어떤 이중성을 발견하면서 자신을 미러링하곤 했다. 딸의 엄마로서 나오는 반응과 감독으로서 그걸 거리두기하고 관찰하는 나 자신이 양가적으로 존재하는데, 그 지점에서 나를 애써 더 표현하거나 혹은 절제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카메라에 담긴 내가 온전히 진짜라고 확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농가의 여성들을 담았던 <땅의 여자>에 이어 <까치발>에서도 중요한 것은 공동체적 감각이다. 각 개인의 씨앗이 집단 속의 연대와 교류를 통해 비로소 건강하게 움튼다.
=아무래도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95학번 운동권 퇴물 아닌가. (웃음) 사람과 사람이 같이 힘을 합쳐 부대끼며 사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가치였고, 영상을 촉매제로 택한 것이다. 나라고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젊은 감독들이 가진 개인주의적인 발랄함, 과감함이 내게도 필요한 것 같아서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닌 싫어하는 사람들 속으로도 뛰어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철없고 순진하게 들릴지라도 여전히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다.
-다음 작품은 좀더 빨리 만날 수 있을까. 구상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영화를 만드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시대인 것 같다. 반드시 영화라는 소통 창구로 사람들과 만나야 할지, 발랄함과 끼로 무장한 요즘의 영화에 내가 부합하는 사람인지 정말 고민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화하려 노력했으니 앞으로도 내가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 것이라고 확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누군가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그 방식을 또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에 걸맞은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