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디즈니 악녀는 진화한다... <크루엘라> 엠마 스톤, 엠마 톰슨의 매력
2021-06-02
글 : 김소미

엠마 스톤, 그리고 엠마 톰슨의 완벽한 결합이다. 6월 3일, 개봉 8일만에 누적 관객수 약 38만9269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크루엘라>(개봉 5월 26일)를 통해 두 배우가 여성 ‘사이코’ 캐릭터의 반가운 진화를 알리고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의 스핀오프 격 실사 영화인 <크루엘라>는 197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크루엘라의 젊은 시절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엄마를 잃고 좀도둑으로 살던 에스텔라(엠마 스톤)가 바로네스 남작 부인(엠마 스톤)의 패션하우스에 입성하면서 점차 '크루엘라'로 변해가는 과정을 조명하는 이야기다. 정교하게 구현된 오트쿠튀르 패션과 하이스트 장르, 출생의 비밀에 분노한 빌런의 폭주 등 갖가지 장르적 전형을 재조합해 박제되어 있던 여성 빌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동화적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은 주역인 두 배우 엠마 스톤, 그리고 엠마 톰슨의 걸출한 역량은 <크루엘라>의 모든 것이라 할 만하다. <라라랜드>(2016)에서 꿈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배우 지망생을 연기하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엠마 스톤은 지난 5년 사이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2017)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좀비랜드: 더블 탭>(2019) 등에서 꾸준히 시대의 관습과 대결하거나 그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상을 재현하며 남다른 작품 안목을 입증했다.

이는 엠마 스톤과 더불어 제니퍼 로렌스, 마고 로비, 브리 라슨 등의 할리우드 밀레니얼 여성 배우이 가진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번 <크루엘라>에서 엠마 스톤은 상냥한 어머니로부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라는 당부를 번번이 들으며 자라온 천성적인 사이코 기질의 소유자를 연기한다. 무난하고 사회적인 자아를 의식하며 에스텔라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는 바로네스 남작 부인과 일하며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 뒤 억눌러온 난폭한 자아를 끄집어낸다.

디즈니 빌런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쇼맨십은 <크루엘라>에서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영화 후반부부터 비로소 시동을 거는 크루엘라의 폭주에서 엠마 스톤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이 비로소 빛을 발휘한다. 블랙 앤 화이트의 투 톤 헤어에 창백한 분칠을 강조한 크루엘라가 자신의 사악함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시퀀스에선 엠마 스톤 특유의 만화적인 이목구비가 섬뜩한 빌런을 위한 완벽한 캔버스로 기능한다. 엠마 스톤은 TV 프로그램의 단역으로 경력을 시작해 2007년 코미디 영화 <슈퍼배드>로 데뷔한 스크린 스타이지만 <크루엘라>와 같이 연극 출신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메소드 연기의 아우라도 발산해내는 독특한 재능의 소유자다. 전작 <아이, 토냐>에서 라이벌 폭행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피켜스케이터 토냐 하딩의 삶을 재현했던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은 인물의 양면성을 자유자재로 펼쳐 보인 엠마 스톤의 연기를 "정교하게 춤을 춘다"고 표현했다.

한편 얌전했던 에스텔라의 본능을 깨운 이, 바로네스 남작 부인 역의 엠마 톰슨은 성공을 위해 잔악무도한 삶을 택한 살벌한 폭군을 연기했다. 톰슨은 <남아있는 나날>(1993)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 같은 영국 시대극의 우아한 주인공이자, <러브 액츄얼리>(2003) 속 조니 미첼을 사랑하는 평범한 영국인들의 얼굴이었고, 최근 <칠드런 액트>(2018)에서는 도덕적 딜레마에 처한 동시대의 지성이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선 트릴로니 교수, BBC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선 악명높은 정치인 비비안 룩을 연기한 그는 <크루엘라>에서 비대한 자아와 존재감을 지닌 일인자 캐릭터를 또 한번 소화하면서 탁월한 장르 소화력도 과시 중이다.

"넌 재능이 있어. 문제는 네가 킬러 본능이 있느냐 하는 거지." 바로네스 남작 부인이 에스텔라의 디자인을 칭찬한 뒤 올리브를 와그작 씹어먹는 장면은 짜릿하다. "모든 타인은 장애물"이라 일컫는 그녀는 "내가 다른 사람을 신경 썼다면 숨겨진 걸작과 쓰라린 아픔을 남기고 사라져 간 다른 여자들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독설을 갈무리한다. 완벽하게 재단된 실크와 새틴을 내내 온몸을 휘감고 나타나는 <크루엘라>의 엠마 톰슨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며 소름 돋게 우아하다.

"탁월하고, 나쁘고, 약간 미친" 두 엠마들의 걸출한 '사이코 되기'를 보여주는 <크루엘라>는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여성 빌런들을 맞이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엠마 스톤은 최근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배우 맬리사 맥카시가 <인어공주>에 나오는 바다의 마녀, 우르술라를 연기하는 것에 큰 기대감과 동료애를 나타냈다. "문어인 우르술라의 세계가 우리들의 것처럼 펼쳐지겠죠. 인간이 아닌 디즈니 악당이 이런 식으로 탐구되는 것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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