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김형석, 최은영 프로그래머 “영화제는 에디팅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2021-06-11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최은영, 김형석(왼쪽부터).

휴가의 단맛 같은 영화제가 돌아온다. 제3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이하 평창영화제)가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엿새간 강원도 평창군 일대에서 열린다. 개막작인 안재훈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무녀도>를 시작으로 26개국 78편의 영화가 대관령 횡계리와 알펜시아 일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지난해 완판된 <2×9 이옥섭 구교환 스페셜북>처럼 올해는 안재훈 감독을 주인공으로 한 스페셜북 <연필로 명상하기-애니메이션 by 안재훈>이 발행되며, 전시 공간 포테이토클럽하우스에서는 ‘연필로 명상하기 안재훈 감독전’도 열린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선수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공간이었던 올림픽메달플라자, 서늘한 감자창고였던 감자창고 시네마, 기암괴석을 테마로 한 평창바위공원 등이 평창영화제만을 위한 상영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1회 때부터 영화제를 이끌어온 김형석 프로그래머와 최은영 프로그래머를 만나 평창영화제의 이모저모에 대해 물었다.

-평창영화제가 올해로 3회를 맞았다.

김형석 일반적인 영화제의 초기 3년과 달리 다사다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이슈가 2회 때 있었고, 1회 때 평창과 강릉 두곳에서 영화제를 열다가 2회 때 평창으로 옮기기도 했다. 또 평창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어서 대안 상영관에서 상영을 해야 했고. 극장이 아닌 곳을 극장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노하우가 쌓였지만 시시포스 신화가 실감되는 시간들이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최은영 2회 때부터 평창에 대안 상영 공간을 만들고, 개최 시기를 8월에서 6월로 옮겼다. 1회 때 극장이 없어서 강릉과 이원화하는 식으로 영화제를 시작했더니 떨어진 상영관을 오가는 문제가 생각보다 컸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경우, 극장이 아닌 시민회관과 체육관을 영화관으로 탈바꿈시켜서 영화제를 연다. 작은 마을일수록 영화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제측이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주민들과 함께하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면 정말 재밌다. 평창도 이원화돼 개최하기보다 이런 방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또 2회 때부터 개최 시기를 8월에서 6월로 옮겼는데, 휴가철에 열면 교통과 숙박에 문제가 있어서다. 또 6월에 개최된다면 한국전쟁과 호국보훈기념일 등이 있어 영화제의 정체성과 맞겠다 싶었다. 영화제의 한해 한해가 똑같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김형석 (눈을 감고) 영원히…. (웃음)

-올해 슬로건은 ‘새로운 희망’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부제이기도 한데.

최은영 김 프로님이 지었다.

김형석 지난해 슬로건이 ‘다시 평화’였다. 좋았지만 정치 구호 같기도 했다. 올해는 좀더 영화적인 슬로건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부제인 ‘새로운 희망’은 심플하면서도 들었을 때 가슴 설레고 환기되는 느낌이 있다.

-프로그래머 두분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하나.

김형석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맡은 파트는 한국영화로, 스펙트럼K와 시네마틱 강원의 프로그램을 짠다. 부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의 내부 살림도 맡아 한다.

최은영 나는 해외영화를 담당한다. POV와 스펙트럼, 국제장편경쟁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평양시네마 섹션의 경우, 해외영화도 있고 한국영화도 있기 때문에 함께 프로그래밍한다고 보면 된다.

-올해 평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26개국에서 온 78편이다. 이 작품들에서 어떤 경향이 느껴진다면 무엇인가.

최은영 소수자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갈수록 늘어난다고 느꼈다. 소수자들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감독과 촬영 등에 소수자들이 나서고 리더가 되어 이끌어간다는 게 많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 때문일 수 있을 것 같다. 헤게모니가 재편되는 과정에 있는 것 같고 영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김형석 작품에서 나타난 트렌드보다 영화제란 환경 자체가 새로운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동안 영화제들은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고 스타들을 레드 카펫에 올리는 작업을 20년 넘게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들이 영화제에 오지 않으려 하고 소속사에서도 혹여나 코로나19에 걸릴까봐 못 가게 하는 게 현실이다. 영화인들은 절박하니까 OTT로 가느냐 극장으로 가는 거냐 정도의 고민만 하고 있고, 관객은 잘 모이지도 않는다. 결국 영화제는 에디팅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녀도>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틀었던 작품이다. 평창에서 상영되는 건 그때보다 신의 완성도를 높인 버전이긴 하지만 기존 시선으로 봤을 때 <무녀도>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는 건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녀도>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야외에서 LED 화면으로, 좋은 사운드로 보면 다른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다. 같은 영화도 환경을 다르게 하면 경험이 달라진다. 갈등과 대립, 분열이란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고, 장편애니메이션이란 외길을 걷는 안재훈이란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도 표하고 싶었다. 안재훈 감독은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창작자인데 그에 대한 국내 평가를 보기 어렵다.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스튜디오는 점점 진화하고 확장되고 있는데 아무도 평가를 안 하는 거다. 안재훈 감독을 모셔서 전작을 다 틀고, 전시를 준비하고 안재훈 감독에 대한 스페셜북도 냈다

최은영 영화와 영화인에 대한 이야기가 물화되어서 내 손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우리 모두 알고 있잖나. 지난해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스페셜북을 잡지처럼 화보 사진과 인터뷰를 많이 실었던 것과는 다르다.

김형석 지난해 스페셜북은 팬심을 최대한 충족시키려고 한 작업이었고 올해는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청소년이나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어떻게 애니메이터가 되는지, 또 어떤 식으로 상상력이 발휘되는지 알 수 있도록. 매년 이렇게 평창이 지지하는 아티스트를 정리하면서 특색 있는 책자를 내려고 한다.

-한 가지 주제를 다루는 POV 섹션은 ‘여행’을 키워드로 꼽았다.

최은영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가장 그리워하게 된 게 여행이다. 초청작 6편은 모두 다른 의미의 여행을 담고 있다. 물리적인 여행을 떠나는 영화도 있고(<아주 특별한 여행>), 갑자기 떠난 여행에서 만난 여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전원, 승차!>)도 있다. IS의 수도였던 라카의 여성 시장 레일라 무스타파를 만나러 가는 영화(<라카에서의 9일>)도 있다. 일상에 지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 떠난 여행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 영화(<희수>)도 있다.

-스펙트럼K 섹션에 박지완, 이준익, 김종관 감독을 초청했다. 세 감독을 한국영화의 경향으로 꼽은 이유는 뭔가.

김형석 영화판이 코로나19로 초토화됐다. 박스오피스는 말할 것도 없고 관객과의 대화(GV)도 제대로 안 이뤄지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개봉작 중 GV를 못한 영화를 꼽아봤는데 김종관 감독의 <조제>가 GV를 못했다는 걸 알고 놀랐다. 박지완 감독의 <내가 죽던 날>도 김혜수, 이정은이 출연한 영화인데 어떤 식으로든 GV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못했더라. 이 영화들을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하면 어떨까 하고 감독들에게 전화했더니 다들 좋아라 했다.

-이 섹션에 ‘GV 어게인’이란 부제를 붙였는데, GV가 시네필 문화에서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하나.

김형석 핵심이고 중요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듣도 보도 못한 신인감독과 낯선 영화를 가지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GV란 자리는 소중하다. 살면서 우리 사이에 그런 식의 소통을 하는 자리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딱히 없다. 감독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GV는 강렬한 문화적 경험이다. ‘GV계 송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랫동안 모더레이터로 일했다. 부산국제영화제 GV 때 어떤 할머니가 질문 끝에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니까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진 적 있는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평창영화제 동안 강원 지역 아이들이 참가하는 평화 아카데미 행사가 있는데, 지난해에는 아이들이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단체로 보고 윤가은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최은영 해외 관객은 모더레이터와 감독이 하는 대화를 듣고 싶어 한다면 우리나라 관객은 확실히 영화에 관심이 많고 열정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향이 있다.

-평창 바위공원, 올림픽메달플라자, 감자창고 시네마, 알펜시아 콘서트홀, 컨벤션 센터 등 다양한 곳에서 상영과 행사가 열린다. 프로그래머로서 어떤 공간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나.

김형석 지난해 <라라랜드>를 틀었던 바위공원을 잊지 못한다. 여름엔 해가 길어서 밝을 때 시작했던 영화가 클라이맥스로 치닫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자연 안에서 서사를 느낀다는 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영화적 체험이다.

최은영 두 장소를 꼽고 싶다. 하나는 올림픽메달플라자로, 평창영화제의 메인 야외 상영 공간이다. 올림픽메달플라자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뜨문뜨문 의자가 놓여 있다. 밤에는 영화가 상영되고 낮에는 관객이 공연을 보고 책을 보며 쉬는 공간인데, 마치 로카르노국제영화제의 명물인 광장 상영 같은 느낌이다. 올해 새롭게 상영 공간으로 마련된 감자창고 시네마도 꼽고 싶다. 창문이 하나도 없고 시원하고 넓은 감자를 쟁여두는 창고였다가 상영 공간으로 꾸며졌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영화 보기에 최고다. 소리의 울림이 없게 꾸몄고 캠핑 의자를 놓고 누워서 볼 수 있도록 꾸렸는데 정말 기대된다.

김형석 요즘 컴퓨터 모니터로 영화를 많이 본다. 어쩌면 영화를 소비하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어느 공간에서 누구와 보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관객이 평창영화제를 통해 의자에 몸을 맡기고 영화를 감상하면서 잊고 있었던 감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