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리뷰] '웬디' 피터 팬을 웬디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
2021-06-25
글 : 박정원 (영화평론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곧 상실을 뜻한다. 건강과 열정, 순수함과 상상력, 호기심과 용기를 조금씩 잃어가며 현실적인 두려움에 휩싸이고, 익숙하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다. 그렇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사는 것이 꼭 좋은 것일까? 네버랜드의 피터 팬은 “그렇다”라고 답할지도 모르나, 현실 세계를 사는 웬디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피터 팬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 <웬디>는 동심의 상징이자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 피터 팬을 웬디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겪게 되는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소녀 웬디(데빈 프랑스)는 기찻길 옆 식당에서 홀어머니를 도우며 쌍둥이 남자 형제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와 살고 있다. 꿈 많던 아이가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채 인생이 무료하게 흘러갈 것임을 짐작하고 있는 웬디는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뜨거운 모험심을 품고 있다.

어느 날 밤, 장난스러운 소년 피터(야슈아 막)가 탄 기차를 발견한 웬디는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그 기차에 올라타고 머나먼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 신비로운 섬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활기찬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더글라스가 갑작스레 실종된 뒤 제임스가 깊은 실의에 빠져 기쁨과 희망을 잃어버리자 그의 신체 일부가 노화하기 시작한다.

장편 데뷔작 <비스트>(2012)로 제28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제65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등을 수상한 벤 자이틀린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웬디>는 어린이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영화는 기존의 <피터 팬>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벗어나 야성적이고 날것의 분위기를 담아낸다. 16mm 카메라의 거친 질감과 자연광을 통해 모험영화의 생동감과 스릴감을 극대화했다. 요컨대 <웬디> 속 네버랜드는 달콤한 꿈같은 판타지 세계라기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시기에 겪어야 하는 ‘성장통’을 영화적으로 구현한 불안정하고 투박한 공간에 가깝다.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원작과 다르지만 그중 가장 주목할 것은 피터와 웬디의 변화다. 우선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영화는 웬디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영화 속 웬디는 소년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수준을 넘어 능동적으로 모험을 떠나는 강하고 용감한 인물로 그려진다. 피터는 원작에서 백인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과테말라 출신의 흑인 비전문 아역배우를 현지 캐스팅했는데, 감독은 이같은 결정에 대해 원작이 가진 인종차별적 요소를 벗어나 본질적인 인간의 질문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터는 영화에서 ‘영원한 아이’를 대표하는 속성, 예컨대 완고하고 통제 불능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주인공 웬디가 후반부에 얻게 되는 나이 듦에 관한 깨달음과 대비되며 주제의식을 부각한다.

영화는 주요 촬영 장소인 카리브해 몬트세랫섬의 광활한 풍광과 웅장한 배경음악을 통해 보고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웬디 역의 데빈 프랑스를 필두로 한 아역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영화 안에 녹아들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다만 중반부 이후부터 극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깊은 바닷속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의 비밀과 이후 전개 방향, 설정의 짜임새가 영화의 전반적인 스케일에 비해 다소 빈약한 인상이다.

또한 영화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인물들의 내레이션이나 대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전달하는데, 메시지 자체는 분명 나름의 여운과 깨달음을 주지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상투적이고 평면적이다. 결과적으로 범상한 재해석 이상의 성취가 엿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CHECK POINT

어른이 된다는 것

피터 팬과 웬디, 두 주인공은 각각 영원한 젊음과 자연스러운 나이 듦을 상징한다. <웬디>의 방점은 후자에 찍힌다. 나이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꿈과 열정을 잃지 않을 것. 영화를 만드는 동안 32살에서 38살이 됐다는 벤 자이틀린 감독은 영화를 통해 나이가 들수록 삶이 더욱 풍부해지고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남매의 협업

<웬디>의 각본은 감독인 벤 자이틀린과 그의 여동생 엘리자 자이틀린이 함께 썼다. 두 사람은 단편 <에그>(2005), <글로리 앳 시>(2008)에 이어 벤 자이틀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비스트>까지 함께 작업해왔다. <웬디>의 경우, 어린 시절 피터 팬을 기다렸던 두 사람의 추억과 동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또 다른 주인공, 몬트세랫섬

영화 속 ‘네버랜드’의 실제 촬영 장소는 카리브해의 작은 화산섬인 몬트세랫섬으로 바다와 산, 열대우림과 절벽 등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다. 야성적이고 거친 분위기로 그려지는 이 섬은 인물만큼이나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영화의 무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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