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권익준·김정식 감독, 청춘시트콤의 핵심은 동경과 공감이다
2021-07-01
글 : 배동미
사진 : 최성열
넷플릭스의 첫 K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권익준, 김정식(왼쪽부터).

더는 방송사에서 시트콤을 제작하지 않는 시대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K시트콤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이하 <지구망>)는 대학 국제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일상을 30분 분량으로 담아낸 12부작 시트콤이다. <지구망>은 K드라마가 좋아 한국에 온 외국인, 한국 사람처럼 보이지만 외국 국적의 이민 2세, 외모는 낯설지만 전형적 한국인 혼혈 등이 뒤섞여 사는 현대 한국 사회를 신선하게 그려낸다.

권익준 감독은 <지구망>을 기획하고 작가와 대본 작업을 하는 쇼러너 역할을 했고, 김정식 감독은 촬영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권익준 감독은 <남자셋 여자셋> 조연출, <논스톱4> 연출자 출신으로 청춘시트콤의 대가이고, 김정식 감독은 <하이킥> 시리즈 조연출, <감자별 2013QR3> 연출을 거친 홈시트콤의 명수다. 개성 넘치는 시트콤을 만든 두 사람에게 <지구망>에 대한 이야기와 시트콤만의 맛을 물었다.

김정식, 권익준(왼쪽부터).

-<지구망>은 어떻게 기획했나.

권익준 CJ E&M 중국지사에서 7~8년 동안 근무하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보니 ‘헬조선 담론’이 유행 중이었다. 한국 청년들은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며 북유럽으로 이민 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반면, 외국 청년들은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었다. 외국 청년들에게 한국은 밤새 놀 수 있는 재밌는 나라였다. 아이러니했다. 이런 맥락을 담아낼 수 있는 접점이 국제기숙사라는 시트콤의 배경이었다. 제작사인 미스틱스토리에서도 콘텐츠 작업을 하고 싶어 했고, 넷플릭스에서도 시트콤을 찾고 있었다. 우연히 상황이 잘 맞았다.

-연출자로서 어떤 캐릭터에 애착을 느꼈나. 개인적으로는 <뉴 논스톱>의 짠돌이 경림(박경림)이 생각나는 세완(박세완)에게 정이 가더라.

권익준 세완과 경림이 비슷한 건 맞다. 다만 경림은 못사는 집 애지만 열심히 살면 된다는 희망이 있었다면, 세완은 더 부정적으로 ‘내일 지구가 멸망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청년이다. 요즘 친구들은 세완처럼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정말 힘들게 사는 듯해 마음이 아프다. 세완에게 현재 한국 청년을 많이 투영하려 했고, 이 캐릭터를 가장 오래 생각했다. 세완과 정반대 캐릭터는 현민(한현민)이다. 한국 사회에서 혼혈은 정말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현민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너무 해맑고 즐겁다. 눈앞의 일만 잘 해결하면 즐거워하고, 안 좋은 일이 생겨도 허허허 하고 넘어간다. 현실은 세완이지만, 현민을 지향하자는 의미에서 극을 만들었다. 그리고 두 캐릭터를 붙이면 케미가 너무 좋고 코미디가 잘 살았다. <뉴 논스톱>에서 박경림과 양동근이 함께 연기할 때의 케미가 생각났다.

김정식 나도 캐릭터 면에서 현민에게 애착이 많이 간다. 캐릭터 자체가 제일 재밌고 시트콤적이다. 배우 한현민 자체가 극중 현민과 똑같다고 보면 될 정도로 맑고 긍정적이다. 배우로서는 박세완에게 제일 애착이 간다. 8명의 주요 캐릭터를 맡은 배우 중 박세완이 거의 유일한 연기 경험자였는데 다른 배우들을 많이 챙기고 연출자인 나와 작품에 대해 많이 의논하면서 큰 역할을 했다.

-배우 이광수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처음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배우로 성장했다. 뉴 페이스가 주는 신선한 웃음이야말로 시트콤의 재미인 것 같다. 특히 이 시트콤에는 외국인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캐스팅했나.

김정식 한국에 있는 젊은 외국인은 다 만나봤다. (웃음)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한국에 오래 산 나이 많은 분들이어서 20대 초반 외국인 배우를 찾았다. 그 나이대에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외국인은 일단 다 만났다. 한스를 연기한 요아킴 소렌슨은 연기가 처음이고, 테리스 역의 테리스 브라운은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카슨(카슨)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사실 우리나라 작품에서 외국인 캐릭터에게 대사가 많이 주어지는 편이 아니어서 다들 경험이 많지 않다.

권익준 외국 배우들이 대사 외우느라 정말 죽도록 고생했다.

김정식 그래서 대본 리딩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극중 한국 문화를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니 평소 잘 안 쓰는 표현과 내용이 많았고 외국 배우들이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표현의 전반적인 상황이나 속뜻을 알려줘야 했다. 거기다 우리말이 본래 어렵잖나. 말의 묘미 때문에 코미디가 되고 안되고가 갈리는데 그런 것들을 리딩하면서 많이 알려줬다.

-현장에서는 연기를 어떻게 디렉팅했나.

김정식 연기를 하지 말라는 게 배우들에게 한 가장 큰 주문이었다. 다들 아직까지 신인이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에 빠져들어서 표현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기 모습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쉽다. 자신의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고 우리가 그걸 담아야지 캐릭터가 될 수 있어서 제작진이 대본을 조정했다. 예를 들자면, 대본 속 제이미는 차갑고 도시적인, 고양이 같은 캐릭터인 반면 배우 신현승은 강아지 같은 매력을 갖고 있다. 순수하고 교회 오빠 같은 모습이 있다. 그런 모습을 시트콤에 녹여내려고 했다.

권익준 시트콤의 전법이 드라마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배우가 스토리 속 인물을 해내지 않으면 안되지만 시트콤은 다르다. 인물에게 집중하고 사건을 줄여나가면서 인물과 이야기를 잘 맞추면 된다. 심지어 말을 잘 못하는 배우라면 말을 잘 못하는 캐릭터화해야 하는 것이다. 청춘시트콤은 본래 신인들과 하는 작업이고 신인들의 잠재력을 믿고 가야 한다.

-김병욱 PD의 영향인지 한창 재밌게 본 정든 시트콤이 비극으로 끝나면 어떡하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설마 <지구망>도 비극적으로 끝나나.

권익준 추측이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세경(신세경)과 지훈(최다니엘)의 엔딩 신은 김병욱 감독님이 오랜 제작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웃음) 당시 CP로서 6개월간 김병욱 감독님이 스튜디오 녹화를 다 하고, 밤새 대본을 쓰는 걸 봤다. 밤을 너무 많이 샜고 촬영 기간 중 링거도 여러 번 맞았다.

김정식 김병욱 감독님이 원래 비관론자다. (웃음) 그런 분이 코미디를 하니까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작이 탄생했다. <지구망>의 엔딩은 끝까지 보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보면 알지롱.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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