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웬디' 벤 자이틀린 감독…후크 선장, 악당으로 그리지 않은 이유는
2021-07-01
글 : 조현나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2021년은 소설 <피터 팬과 웬디>가 발표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다. 영원히 늙지 않는 섬 네버랜드로 우리의 손을 이끄는 피터 팬과 웬디가 돌아왔다. 벤 자이틀린 감독의 신작 <웬디>는 기찻길 옆 작은 식당에서 살아가는 웬디(데빈 프랑스)와 더글라스(게이지 나퀸), 제임스(개빈 나퀸)를 피터(야슈아 막)가 네버랜드로 데려가며 일어나는 일을 그린다.

피터의 인도로 아이들이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은 같지만, 웬디는 앞장서 섬을 탐험하는 리더가 되었고, 아이들은 후크 선장 대신 다시 어려지려는 노인들과 맞선다. 벤 자이틀린 감독은 전작 <비스트>로 제6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제28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촬영상 등을 수상했다. 그가 새롭게 창조한 피터와 웬디, 네버랜드는 어떤 모습일까.

-<비스트> 이후 <웬디>를 발표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웬디> 작업에 바로 들어갔다. 작품에 알맞은 사람들과 장소를 찾으며 작업하다보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동생 엘리자와 함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던데.

=<웬디>는 엘리자와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피터 팬이 우리 집 창가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당연히 피터 팬은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도 어른이 됐지만 대신 우리가 피터 팬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영화에 담았다.

-<비스트>의 허쉬파피처럼 <웬디>도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아이들의 성장 스토리에 관심이 많나.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은 늘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지 않나. 영화감독으로서 무언가를 상상하고 만들어낼 때 아이들과 교감하는 것이 내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피터 팬>은 원작 소설도 있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애니메이션도 다수 존재한다. 참고한 관련 영상이나 레퍼런스가 있나.

=참고한 작품은 <네버엔딩 스토리> <E.T.> 그리고 현실성을 갖추기 위해 여러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특정 버전의 피터 팬 영화를 참고하기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피터 팬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더불어 피터 팬이 시대를 막론하고 강렬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비스트> 때와 마찬가지로 비전문 배우들을 주로 고용했다던데.

=내가 살고 있는 루이지애나에서 수천명의 아이들이 오디션을 봤다. 피터 역의 야수아 맥은 당시 5살로 겨우 글을 읽을 정도로 어렸다. 영화 제작이 오래 걸린 것도 야수아를 포함한 아이들이 적당한 나이가 되도록 기다렸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훈련받은 작은 어른처럼 행동하게 하는 대신,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웬디는 원작에선 아이들을 포용하는 이미지가 두드러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진취적이고 리더십이 강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원작의 웬디는 여성이란 이유로 모성이 강조되고 다소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나. 엘리자가 원작 속 웬디의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웬디를 영웅과 다름없는 인물로 새롭게 창조했다.

-원작과 또 다른 차이점은 아이들이 네버랜드의 하늘을 나는 대신 바닷속을 헤엄쳐 다닌다는 것이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게 하늘을 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관객에게도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할 것 같았다. ‘어머니’라는 새로운 캐릭터도 주된 배경을 바다로 바꾼 이유 중 하나다. 어머니는 빛을 품은 거대한 물고기 같은, 비현실적이지만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생명체인데 팅커벨과 인어를 대체하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비스트>에서도 강을 굉장히 중요한 공간으로 묘사한다. 물의 이미지에 매료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루이지애나에서 물은 없어선 안될 요소이자 통제할 수 없는 한계점을 시사하는 대상이다. 물을 영화의 공간으로 설정하면 어떻게 촬영을 이어가야 할지 매일 다른 과제를 부여받는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포착하려는 내게 물은 흥미로운 공간이자 소재다.

-네버랜드의 화산 또한 주요하게 활용했다. 피터는 폭발하는 화산과 마치 대화하듯 교감한다.

=화산은 주변 지형을 끊임없이 새롭게 창조하고 변화시키지 않나. 말하자면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지형이 화산이다. 피터도 늙지 않으니 이러한 화산을 본인의 친구처럼 여긴다. 멀리 떨어진 화산섬에서 촬영을 진행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후크 선장을 악당으로 그리지 않은 이유가 있나.

=후크 선장을 원작보다 복잡하게 그리고 싶었다. ‘나이를 먹는 대신 내면이 성숙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 길을 잃은 소년과 같은 모습으로 연출했다. 그런 의미에서 후크 선장은 굉장히 비극적인 인물이다.

-피터가 ‘늙는다는 건 위대한 모험’이라고 이야기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감독은 ‘나이듦’을 무엇이라 생각하나.

=피터 팬처럼 나 역시 어릴 때 나이드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나이가 들면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만 같았거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현재로선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이드는 게 생각만큼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것. 또한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에 누린 무한한 자유, 즐거움, 꿈을 놓아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이 전처럼 순탄하지 않을 텐데 차기작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코로나19 이전부터 구상하던 작업을 현재 진행하고 있다. 루이지애나를 배경으로 하되 전작들과 달리 판타지 장르도 아니고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도 않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미국 남부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과 연결지점을 찾는 영화다. 이번 작품은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란다. (웃음)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