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이 제작하고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공포 영화 <랑종>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언론에 첫 공개된 <랑종>의 시사회장에서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안도하는 한숨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는 것만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은 <랑종>은 태국의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 되는 무당(랑종) 가문의 이야기를 다룬다. 예고편은 정말이지 예고에 불과하다. 무사히 관람을 마친 기자들의 첫 반응을 전한다.
송경원 기자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기획, 원안을 맡고 <셔터>(2004), <피막>(2013)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합작품. 제목인 랑종은 무당을 의미하는데, 모든 것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태국의 무속신앙 한 가운데에서 모두를 현혹한다. 나홍진이 반종 피산다나쿤에 빙의한 건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나홍진에 씐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두 연출자의 그림자가 절묘하게 섞인 결과물. 무당과 신내림에 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시작해서, 전형적인 태국 호러영화의 클리셰들로 장식하다가, 당신이 목격한 것들의 근간을 흔들어버리며 나홍진스럽게 마무리한다. 아이디어나 골자는 무당을 소재로 한 <블레어 윗치>나 다름없다. 하지만 불균질하고 다소 늘어지는 전개 사이마다 덕지덕지 붙은 살점들에는 나홍진의 DNA가 새겨져 있다. 무섭거나 놀라기 보다는 불쾌하고 찜찜하게 내리누르는 쪽에 가깝다. 점프 스케어 등 호러적인 장치는 익숙하다 못해 조악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런 아쉬움들을 압도할 불쾌함의 습도로 가득 찬 영화. 찝찝하고 끈적거리는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 나홍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곡성>에서 선을 넘지 않던 것들을 다 쏟아 부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과한 핸드 헬드 기법에 더해 혐오감이 들 전개로 인해 (좋은 의미, 나쁜 의미 양 쪽으로 모두)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길고, 처음-중간-끝이 불균질하지만 관객을 현혹하는 손짓의 존재감만큼은 확실하다.
남선우 기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영화가 끝나서 다행이다. 영화 속 이산 지역 사람들이 믿듯, <랑종>에 깃든 호러의 신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사히 좌석에서 일어나 극장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에 탄복하는 이유는 독자의 예상대로다. <랑종>은 무섭다. 눈물나게 무섭다. 중반부까지는 잔잔하다. 대를 이어 무당으로 살아온 님(싸와니 우툼마)의 이야기는 <심야괴담회>에 나오는 기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저주의 실체가 밝혀지고, 악령들이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하면서 핏빛 장마가 쏟아진다. 우리는 더이상 영화와 발맞추지 못한다. 영화에게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가는 기분이 된다. 빙의된 밍(나릴라 군몽콘켓)은 태연하게 인간이길 포기하고, 카메라는 페이크 다큐라는 형식에 걸맞게 곡예한다. 퇴마를 앞두고 밍의 집안 곳곳에 설치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공개될 때가 압권이다. <랑종>은 식은땀의 배출부터 건조까지 책임지는 여름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반드시 극장에서 볼 것을 추천한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계로 영화를 보면 몇 번이고 멈추고 싶을 것이다. 더불어 <랑종>을 집밖에서 본 후 집으로 돌아와야 그 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예비 관객의 겁을 조금 덜어주는 차원에서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랑종>을 다 보고 제작에 참여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보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유전>이 더 떠올랐다. 관람 후 영화가 품은 질문으로 인한 심리적 탈진 상태가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 느낌이다. 뒤끝 없이 장르적 쾌감으로 질주하고, 완주하는 영화다.
김현수 기자
무섭다. 많은 장면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끔찍한 광경이 만약 실제 벌어진다면 어떨까, 라는 더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현대 호러 영화의 클리셰라고 할 만한 몇 가지 기법들을 활용해 공포의 밀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무당 가문에 관한, 신내림을 대물림하게 되는 여성 무당의 비극적인 생을 다룬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는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가 보여주는 퇴마의식과 믿음 앞에 무너져 가는 개인의 무력함 같은 것들이 연상된다. 형식 면에서는 <블레어 윗치> 이후 유행처럼 번져간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파운드푸티지 장르의 효과를 영리하게 배치한다. 공포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라기보다는 일단 표면적으로 설계된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겨야 더욱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현대 공포 영화가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끔찍한 묘사가 쏟아진다.
배동미 기자
무시무시한 영화다. 나홍진 감독이 <곡성>에서 반복해온 주제 의식인 '믿음이 불가능해진 사회'를 습하고 눅눅한 태국으로 옮겨갔다. <곡성>과 다른 매력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셔터>에서 보여준 적 있는 기록 매체가 야기하는 공포를 한껏 끌어올린 '신들린 카메라'에 있다. 오컬트 영화란 본래 "믿음이 가능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프레드릭 제임슨)를 그리는 것이다. 탈정치의 시대에 믿음과 적대를 가를 전선은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랑종>은 믿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믿음을 위한 의식들을 복잡하고 요열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발견하는 건 '우리가 믿고 따를 것이 없다'는 단순한 진실 뿐이다. 스크린에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믿음을 따르기 위한 '과정'일 따름이다. (주인공 랑종 일가인) 마닛과 노이는 물론 관객까지 그 '과정'에 미혹될 뿐,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을 찾은 이는 누구도 없다. 영화가 끝난 뒤, 찬찬히 되짚어보면 랑종으로 명명된 이들 중 그 누구도 신을 제대로 섬긴 적 없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때리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