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장인인 리처드 도너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데드라인>의 보도에 따르면 사망한 이유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슈퍼맨>(1978)이나 <구니스>(1985)의 감독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당대 최고의 액션 영화 <리쎌웨폰> 시리즈를 연출한 사람으로 유명한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전까지 경력의 상당 시간을 TV 시리즈를 만드는데 보낸 다작 감독이다. 1930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에서 비니니스와 연극을 전공했던 그는 1958년 LA로 건너가 <환상특급>(1958), <라이플맨>(1962), <맨 프롬 엉클>(1964), <길리건의 섬>(1964), <페리 메이슨>(1964) 등 다양한 장르의 TV 시리즈를 왕성하게 연출했다.
TV에서 경험을 쌓은 그가 1961년 할리우드로 진출한 뒤 <오멘>(1976)으로 인정 받기까지 무려 10년넘게 걸렸다. <엑소시스트>(1975)와 함께 오컬트 장르의 붐을 일으킨 <오멘>은 일부 관객들에게 큰 쇼크를 주며 상업적으로 크게 흥행했다. 이어 리처드 도너 감독이 연출한 <슈퍼맨>은 슈퍼맨을 단순한 히어로가 아닌 신화적 존재로 묘사하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당시 <오멘>은 오스카상 두 개 부문에, <슈퍼맨>은 오스카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었다. 특히 <슈퍼맨>은 마블이나 DC의 히어로 프랜차이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영향을 크게 받은 영화로 <슈퍼맨>을 꼽으며 “우리가 잘 이야기하지 않지만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위대한 영화 중에는 딕 도너(리처드 도너의 애칭) 감독의 <슈퍼맨>이 있다. 이 영화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슈퍼맨2>에서 강제 하차 당한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이었다. 스필버그 감독은 이미 중년에 접어든 그에게 현대판 보물섬 같은 이야기인 <구니스>(1985)의 메가폰을 맡기고, <구니스>는 흥행에 성공했다. 리처드 도너 감독이 같은 해 연출한 영화 <레이디호크>(1985) 또한 중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모험담으로 관객에게 사랑 받았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승승장구하던 그가 1987년 <리쎌 웨폰>을 만들며 액션영화의 장인으로 거듭난다. <리쎌웨폰>은 아내가 죽은 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경찰의 폭력을 그려낸 이야기로, 멜 깁슨을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액션 영웅으로 묘사해 관객에게 인정 받았다. 이후 리처드 도너는 <리쎌웨폰4>(1998)까지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매버릭>(1994) <어쌔신>(1995) 등 여러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장인의 죽음을 두고 전세계 많은 영화인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2017)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 등을 연출한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리처드 도너의 영화 중에서 가장 자주 본 영화는 <오멘>이었다. 이 영화는 완벽한 연기와 페이스를 갖춘 호러 영화고, 그래서 1970년대에 당도한 첫 80년대 영화라고 생각한다”며 “생전의 리처드 도너를 딱 한번 만났는데 그는 재미있고 매력적이며 이야기로 가득찬 사람이었다.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게 돼 슬프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애도의 멘션을 남겼다.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2016) <저스티스 리그>(2017) 등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은 “감사합니다, 리처드 도너. 당신은 저를 믿게 만들었어요”라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애도했다.